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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야구팬들의 갈증이 풀렸다. 프로야구가 29일 개막전을 시장으로 팀당 128경기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29일에는 우천취소된 부산 롯데-한화전을 제외한 세 경기가 열렸다. 당연히 전 구장 매진이었다.
KIA는 지난해 삼성에서 고작 4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16경기 중 4승, 한 팀에게 이처럼 약점을 보인다는 건 성적을 떠나 치욕에 가깝다. 아무리 1위 삼성이었지만, 특정팀 상대 약점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떨쳐내야 했다.
하지만 올시즌은 출발이 좋다. 개막전이었던 29일 대구 삼성전에서 2대1로 승리를 거뒀다. 삼성 상대로 움츠려 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선택은 적중했다. 홀튼은 6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97개의 공을 던지면서 4안타 3볼넷 6탈삼진을 기록했다. 투구 내용도 좋았다. 실점한 6회를 제외하고, 5회까지 주자를 내보낸 건 모두 2사 이후였다. 잡아야 할 타자는 확실히 잡았다.
홀튼은 일본프로야구 다승왕 출신이다. 2011년 소프트뱅크에서 19승을 올리며 일본야구를 평정했다. 그만큼 노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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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홀튼의 최고구속은 고작 141㎞. 130㎞대 중반의 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삼성 타자들은 느린 공인데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구속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 바로 볼끝이 살아있었다. 느린 공이라도 홈플레이트 앞에서 죽지 않고 살아 들어가 공략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홀튼은 '디셉션' 동작이 좋았다. 투구시 공을 쥐고 있는 오른팔이 숨어 있다 나오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디셉션이 좋기에 삼성 타자들은 타이밍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다.
홀튼의 커브 또한 일품이었다.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팔각도가 미세하게 변하는 투수들이 많은데 홀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직구와 구속 차이가 시속 20㎞ 가량 나는 커브가 같은 폼, 같은 팔각도에서 나왔다. 게다가 훌륭한 디셉션이 동반된 투구, 타자들은 이미 몸이 반응한 뒤에야 어떤 공인지 알 수 있었다.
홀튼은 캠프 때부터 스피드 탓에 우려를 샀다. 일본 전성기 시절보다 구속이 떨어졌고, 캠프 기간 좀처럼 스피드가 올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공을 밀어 던진다는 느낌을 줬다. 요미우리가 재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팔 상태에 대한 의문점이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홀튼은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는 파워피처도 아닌데다 삼진을 잡는 투수도 아니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타자들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할 줄 아는 여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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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 중 홀튼이 돋보였다면, 불펜에선 넥센 조상우가 빛났다. 조상우는 인천 SK전에 8-3으로 앞선 9회말 등판해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1이닝을 막았다. 지난해 5경기에서 8이닝을 던진 기록이 전부인 투수, 하지만 조상우는 준비된 스타였다.
조상우는 전형적인 파이어볼러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망주들이 그렇듯 제구가 문제였다. 공을 던진 뒤엔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밸런스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상하체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몰랐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신인 조상우를 1군에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다. 실전 등판은 2군에서 하지만, 등판일 이외엔 1군 경기를 따라다니게 하면서 집중조련했다. 1군 선수들처럼 훈련했고, 1군 경기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지난 1년간은 150㎞대 강속구를 뿌리는 필승계투조 조상우를 만들기 위한 기간이었다.
그 결과, 조상우는 150㎞대 직구를 안정적으로 스트라이크존에 넣을 줄 아는 투수가 됐다. 이날 최고구속은 156㎞. 첫 타자 조동화를 상대할 때 3구째 직구를 던지자, 전광판에 이와 같은 숫자가 찍혔다.
문학구장 전광판이 다소 후한 것을 감안해도 조상우는 150㎞대 초반의 공을 아무렇지 않게 뿌렸다. 조동화와 김강민에게 던진 11개의 공은 모두 직구였다. 두 타자 모두 삼진이었다.
마지막 타자 김재현 상대로도 직구 2개를 연달아 던져 0B2S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점했다. 조상우와 허도환 배터리의 14번째 공은 커브였다. 갑자기 허를 찌른 커브에 타자의 배트가 헛돌았고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삼진으로 경기가 종료됐다.
세 타자 모두 삼진, 14개의 공 중 150㎞를 가볍게 넘겼던 13개의 직구. 최근 들어 이만한 임팩트를 보여준 신인이 있었나 싶다. 염 감독은 조상우에게 5점차로 편한 상황에서 올시즌 데뷔전을 갖게 해줬고, 조상우는 이에 부응했다.
한현희-손승락으로 이어지는 넥센의 기존 필승조는 충분히 강하다. 여기에 조상우란 확실한 카드가 생겼다. 넥센이 지난해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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