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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정성훈은 평소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또 독특한 언행으로 프로야구 대표적인 '4차원 캐릭터'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본인도 이를 쿨하게 인정한다. 때문에 인터뷰를 꺼려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수였다. 그래서 야구선수 정성훈의 속내를 기자도, 팬들도 쉽게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기자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정성훈과 마주앉는 횡재 아닌 횡재(?)를 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1루수 전환, 내가 요청했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부터 꾸준히 1루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1루 수비가 쉽다고들 하는데, 정말 어렵고 힘들다. 주자라도 나오면 견제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집중을 해야하고, 중계 플레이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범위도 넓다. 타자가 치는 순간에만 집중을 하는 3루 수비에 비해 개인적으로 1루 수비가 더 복잡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20일 요미우리전에 스타팅 출전을 자청했다. 아직은 실전을 치르지 않아 내 1루 수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실전에서의 감을 빨리 알고 싶었다.
캠프 시작 후 3루 수비 훈련은 거의 안했다. 코치님들께서 1루 훈련만 시키셨다. 사실상 이번 시즌은 1루수로 나선다고 보면 된다. 내가 3루로 나서는 일은 벨이 예상치 못한 난조에 빠졌을 때 정도가 될 듯 하다. 또, 내가 아니어도 (김)용의가 3루 수비를 워낙 잘해 나는 1루에 더욱 집중해야할 것 같다.
-본인 스스로 1루수 전환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이다. 지난 시즌 도중 유지현 수비코치님께 "시즌 중간에는 안되니, 시즌 마치고 1루 전환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옆을 지나가던 유지현 코치는 정성훈의 1루 수비에 대해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왜 그런 큰 결단을 내렸나.
유독 이번 시즌 초반부터 실책이 많이 나왔다.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젊었을 때는 두려운게 없었다. 그런데 실책이 늘어나고 하니 내 마음도 예전과 같지 않더라. 자꾸 "정성훈의 수비 범위가 좁아졌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나도 많이 들었다. 신경을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인 이상 화도 나고 신경도 쓰였다. 그렇다고 불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프로 선수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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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4번 역할을 해왔다. 벨의 영입으로 4번타자로서의 중압감을 어느정도 떨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결코 4번타자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재미도 있었고 오히려 4번 타순에서 성적이 좋았다. (실제 정성훈은 2013 시즌 4번 타순에서의 타율이 3할4푼4리로 가장 좋았다. 타점도 32개를 기록했다.)
-많은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LG 4번 중책이 힘들지 않았다는 뜻인가.
딱 하나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너는 4번타자가 왜이렇게 홈런을 못치느냐"였다. 그런데 나를 보라. 내가 원래 홈런을 뻥뻥 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지 않나. 무조건 4번타자라고 홈런을 많이 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단순히 생각하시는 분들은 홈런을 원하니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없는 LG의 한계상, 마땅한 4번감이 없었다. 찬스에서 가장 해결 능력이 뛰어난 정성훈에게 2012 시즌 4번 중책이 맡겨졌다. 김기태 감독은 장타보다는 찬스에서의 확실한 마무리를 원했다. 이를 '신개념 4번타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LG의 팀 사정을 이해하고 바라볼 부분이다. 그와중에 정성훈은 2012 시즌 12개, 지난 시즌 9개의 홈런으로 두 시즌 연속 오지환과 함께 팀 홈런 부문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외국인 타자의 가세가 정성훈에게 상승효과가 되는지.
솔직히 선수 입장에서는 4번보다는 5, 6번 타순에서 치는게 훨신 마음이 편한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특정 타순을 선호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 뿐이다. 다만, 벨이 4번 자리에서 장타를 많이 때려준다면 아무래도 뒷 타순에 들어갈 나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성훈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제주도에서 비공개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자기 자신 만이 아닌 가족을 챙기고 돌봐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정성훈은 "이렇게 인터뷰를 오래하는 것을 처음보는 것 같다"는 구단 관계자의 말에 "인터뷰 등이 어색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앞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이유가 재밌었다. 정성훈은 "장인어른께서 내가 평소 인터뷰를 꺼리는 스타일까지 알고 계시더라. 한 번은 장인어른께서 '사위가 TV, 신문에 멋지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싶다. 프로선수로서 그런 모습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하며 쑥쓰럽게 웃었다. 평소 장난스러운 모습도 있지만 정성훈은 그 어떤 선수보다 야구에 대해 진지했고, 우려(?)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과 의견도 논리 정연하게 잘 풀어냈다. 중간중간 유머 감각도 보여줬다. 2014년부터는 야구만 잘하는 정성훈이 아닌 팬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프로선수 정성훈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키나와(일본)=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