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텍사스의 간절함 추신수의 마음을 움직이다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3-12-23 11:03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존 다니엘스 단장은 진정성을 보였고, 에인전트 스캇 보라스는 실익을 챙기는데 주력했다. 스포츠조선 DB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어요(Can't Buy Me Love).'

1964년 비틀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노래를 만든 폴 매카트니는 "물질적으로 부유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돈주고 모두 살 수는 없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세월이 흘러 남부럽지 않은 아티스트의 풍족함을 향유하던 그는 "제목을 '돈으로 사랑을 살 수도 있다(Can Buy Me Love)'고 할걸 그랬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이 노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도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돈이 절대적인 의사결정 기준인 비즈니스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많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2011년말 더스틴 니퍼트와의 재계약을 위해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협상을 벌였다. 니퍼트가 살던 곳은 웨스트버지아주 윌링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두 사람은 서울을 떠나 시카고를 경유해 피츠버그에 도착한 뒤에도 차로 2시간을 달려 니퍼트를 만날 수 있었다. 협상을 하기 전에는 니퍼트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리 준비해간 한국 전통품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니퍼트는 두산 잔류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재계약을 하고 난 뒤 "사장과 단장이 직접 올 줄은 몰랐다. 선물까지 챙겨주는 걸 보고 감동했다"고 밝혔다.

FA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텍사스가 제시한 7년 1억3000만달러는 추신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더구나 텍사스에는 주세가 없어 추신수에게 돌아가는 실질 연봉은 다른 구단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조건을 제시한 다른 팀들도 있었지만, 추신수는 일찌감치 텍사스를 마음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텍사스의 단장은 존 다니엘스다. 1977년생으로 추신수보다 5살이 많다. 코넬대학에서 응용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01년 텍사스 구단에 입사해 28세가 되던 2005년 존 하트의 후임으로 단장의 자리에 올랐다. 운영팀 디렉터, 단장보좌역을 거쳐 입사 4년만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로 구단 실무 최고책임자로 올라섰다. 디렉터 시절 마이클 영, 행크 블레이락, 프란시스코 코데로 등 스타선수들의 다년계약을 처리하며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단장이 된 뒤에는 팀 체질 개선을 위해 알폰소 소리아노, 마크 테셰이라 등 영양가 없다고 판단되는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리빌딩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텍사스는 99년 이후 11년만인 2010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텍사스는 2010~2011년, 두 시즌 연속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61년 창단 이후 월드시리즈 근처에도 못 가봤던 텍사스는 다니엘스 단장의 지휘 아래 신흥 명문구단으로 성장했다.

다니엘스 단장이 추신수를 만난 것은 이달초 LA에서였다. 추신수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함께 보라스 코포레이션에서 다니엘스 단장과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다니엘스 단장은 추신수와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간곡히 전달했다고 한다. 또 추신수의 가족을 위해 텍사스 유니폼을 선물하기도 했다.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씨는 텍사스와의 계약이 알려지던 날, 페이스북에 자녀들이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게재해 화제가 됐다. 추신수가 텍사스행을 굳히는 계기를 꼽으라면 아마 이 때쯤이 아닐까 싶다. 계약기간과 금액에 관한 이야기는 스캇 보라스의 몫이었으니, 추신수로서는 다니엘스 단장의 진정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텍사스는 추신수가 평소에도 동경하던 팀이다. 댈러스-알링턴-포트워스로 이어지는 지역은 교민사회가 크게 형성돼 있다. 댈러스는 한국과 직항로 개설된 곳이기도 하다. 추신수가 살고 있는 애리조나주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무엇보다 최근 성적이 말해주듯 텍사스는 우승 전력이다.

1억3000만달러 이외에도 추신수는 제한된 트레이드거부권(limited no-trade clause)과 각종 보너스 조항이 계약에 포함됐다. 매년 자신이 꼽은 10개팀에 대해 트레이드를 거부할 수 있다. 올스타, 실버슬러거, 골드글러브에 선정되거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에 뽑히면 각각 10만달러를 받는다. 정규시즌 MVP 투표에서 1위에 오르면 25만달러를 받고, 2~5위일 경우 5~20만달러를 받기로 했다. 협상 시작부터 계약의 끝맺음까지 텍사스는 추신수에 대한 간절함을 표시하며 귀빈 대접을 해준 셈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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