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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도 많았다. 모두가 주전 유격수의 공백만 말했다. 하지만 3년차 내야수는 떨지 않았다. 그리고 우승을 이끈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삼성 내야수 정병곤의 이야기다.
그렇게 수비보강 차원에서 데려온 정병곤은 첫 해부터 한국시리즈 주전 유격수로 뛰게 됐다. 김상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자, 다른 대안은 없었다. 류중일 감독은 가장 수비가 안정된 내야수로 정병곤을 꼽아왔다. 수비의 중요성이 큰 포스트시즌에서 정병곤의 주전 발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김상수의 공백부터 얘기했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정병곤이 고전할 것이란 예측만 나왔다. 수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삼성의 아킬레스건이 정병곤-김태완의 이적생 '플랜 B' 키스톤콤비라고 봤다.
그는 한국시리즈 기간 내내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명에 '될 놈'이라고 써놓았다. 남들의 시선이 어찌 됐든, 묵묵히 나아가겠단 자신간의 표현이었다.
안정된 수비를 선보이던 정병곤은 5차전에서 처음으로 안타를 날렸다. 1차전 '파울홈런' 이후 존재감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5-5 동점이던 8회 무사 1루에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로 깔끔한 중전안타를 만들었다. 이후 박한이의 2타점 결승타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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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벤치에선 번트 사인을 지시했지만, 정병곤은 자신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첫 포스트시즌을 경험하는 정병곤의 '월권행위'는 아니었다. 이는 삼성이 정규시즌 때부터 준비한, '약속된 플레이'였다. 번트 사인이 났다 하더라도 상대 내야수의 움직임에 따라 작전을 변경하는 것이다. 3루수가 너무 앞으로 들어와 있었고, 유격수의 수비위치상 최소 병살타가 안 나온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하기로 준비된 작전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몸을 풀어간 정병곤은 7차전 들어 처음 실수를 범했다. 1-1 동점이던 3회 1사 1,2루에서 최준석의 평범한 유격수 앞 땅볼을 놓쳤다. 약간 깊은 코스로 온 공을 정확히 백핸드 캐치했지만, 글러브에서 공을 빼다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병곤은 "평범한 공인데 몸이 약간 굳었던 것 같다. 완전히 공을 쥐지 못했다. 그만큼 7차전 땐 처음으로 긴장이 됐다. 그 실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그동안 첫 경험이라 보기 힘들만큼 편하게 플레이했던 정병곤이 처음으로 굳은 순간이었다. 만약 패배했다면, 이날의 '결정적 장면'이 될 수 있었던 순간. 하지만 정병곤은 2-2 동점이던 6회 승부를 가져오는 '진짜' 결정적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선두타자로 나서 좌전안타로 출루한 정병곤은 이어진 1사 만루에서 3루주자로 나가있다 최형우의 3루수 앞 땅볼 때 홈으로 쇄도했다. 평범한 땅볼에 포스아웃 상황으로 홈에서 아웃이 확실시 되던 상황. 이원석의 송구가 다소 왼쪽으로 치우쳤다. 슬라이딩하던 정병곤의 손은 자연스레 어깨 위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순간 공이 손목에 맞고 굴절돼 버렸다.
실책으로 2득점, 사실상 승부가 갈린 것이다. 삼성은 분위기가 급격히 추락한 두산을 상대로 6회에만 5득점하며 승기를 굳혔다. 3회 1실점했던 정병곤의 손이 6회 2득점을 이끌어낸 결정적인 '신의 손'이 됐다.
정병곤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사실 손에 맞았을 때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에 맞았는데도 아픈 느낌 하나 없었다. 진짜 '될 놈'이었던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류중일 감독은 내야자원 부족이 가장 큰 걱정이다. 2군에도 쓸 만한 야수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처럼 갑작스런 주전의 연쇄 공백이 생겼을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정병곤이란 새 얼굴의 등장은 너무나 반갑다. '될 놈' 정병곤이 앞으로 삼성 내야에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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