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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카운트 3B-0S, 타자와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09-16 11:57



스리볼 노스트라이크. 오묘한 볼카운트다. 볼넷이 코앞인데 투수와 타자는 다른 생각을 한다. 투수는 고의성으로 볼넷을 내줄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넣으려 할 것이고, 타자는 볼넷을 골라내도 되기에 보다 편하게 타격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엔 이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심리싸움이 숨어 있다.

보통은 기다린다, 볼넷이 94.2%

흔히 이런 상황에선 투수의 공 1개마다 벤치의 사인이 나온다. '웨이팅' 혹은 '히팅'. 즉 볼넷이 나올 수 있으니 기다려라, 아니면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 쳐라. 아무리 팀의 중심타자라도 타자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주자가 있거나, 득점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벤치의 사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엔 경기 막판에도 큰 점수차가 뒤집히는 일이 많기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타자에게 극도로 유리해진 볼카운트, 벤치는 타자를 컨트롤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부터 재미있는 수싸움이 전개된다. 상대 배터리와 벤치간의 싸움이다. 일단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웨이팅 사인'이다. 1루를 채우거나 거르는 식이 아니라면,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마련이다. 흔히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치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아니다.

올시즌 3B0S 상황은 무려 958차례 있었다. 이중 볼넷이 902개 나왔다. 고의4구를 포함한 개수다. 무려 94.2%의 타자들이 공 한 개를 더 기다려 볼넷을 골라냈다.

NC 김경문 감독은 이에 대해 "투수가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다고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다렸을 때 스트라이크가 들어와도 계속 3B이다. 3B1S, 3B2S까지 계속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많은 경우, 기다리라는 사인을 낸다.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2013 프로야구 경기가 15일 부산구장에서 열렸다. 5회말 1사 만루 롯데 조홍석이 두산 이재우와 9구까지 가는 승부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고 있다.
부산=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2013.09.15/
3B0S에서 타격, 어떻게 봐야 할까?


하지만 3B0S 상황에서 타격이 나오는 경우, 해설자를 포함해 많은 야구인들은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바쁘다. 이는 모두 결과에 의한 것이다.

만약 3B0S에서 기다리지 않고 타격해 안타를 쳤다면, 적극적이고 과감한 타격이 된다. 하지만 만약 범타로 물러나 팀의 찬스가 무산되거나 하기라도 하면, '참았으면 어땠을까요'라는 말이 나온다. 혹은 웨이팅 사인에 의해 기다렸는데 한복판으로 스트라이크가 들어와 볼카운트가 늘어나기라도 하면, '○○○ 정도의 타자라면 노려야죠'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4번타자라고 무조건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거나, 쳐야 한다거나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각각의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자는 나가 있고 반드시 득점을 올려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다음 타석이 만약 대수비 요원도 남아 있지 않은 포수 타석이라면, 벤치는 어떤 지시를 내릴까. 상대가 고의4구를 지시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예였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계속해서 가정해볼 수 있다. 반드시 타석에 있는 타자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 여기에 벤치가 '승부를 걸 때'라는 판단이 들 때도 있다. 하위 타순에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대개 기다리겠지만, 상대 투수의 성향과 승부처의 특성을 감안해 과감하게 '히팅 사인'을 내는 것이다.

김 감독은 "지금 돌이켜 보면, 3B0S 상황에서 한 시즌에 히팅 사인을 10번 정도는 낸다. 안타가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예전에 포스트시즌에서 김재호, 정수빈 등에게 지시해 성공한 적도 있다. 점수를 반드시 내야 하는 상황이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물론 투수의 성향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제구가 불안해 공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투수라면, 히팅 사인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엄한 곳에 공이 들어오는데 헛방망이를 휘두를 수도 있다. 반면 제구력이 괜찮은 투수가 1루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스트라이크존으로 직구가 들어올 확률도 높아진다.


3일 오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3 프로야구 롯데와 넥센의 경기가 열렸다. 1회말 1사 1,2루서 넥센 박병호가 롯데 송승준에게서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어 나가고 있다.
목동=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9.03.
3B0S에서 안타 나올 확률은 2.2%? 팀별 기록으로 본 벤치 특성은?

올시즌 3B0S 상황에서 타수로 기록된 건 총 55차례다. 5.7%다. 총 958차례 중 볼넷이 902개, 사구가 1개 있었고 나머진 타수로 기록됐다. 이 중 안타는 21개 나왔다. 타율로 보면 3할8푼2리다. 나머진 기다렸는데 스트라이크가 들어왔거나 혹은 범타로 물러난 경우다.

통계적으로 보면 볼넷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체 3B0S 상황 중 안타가 나온 건 고작 2.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벤치의 사인이 가장 중요하다. 벤치가 책임을 지는 편이 낫다.

하지만 훌륭한 타자라면, 벤치의 사인에 자신의 판단을 더해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히팅 사인이 '무조건 타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스트라이크존'으로 공이 들어왔을 때 타격하란 것이다. 김 감독은 "사실 히팅 사인이 나와도 공의 궤도를 보고 아니다 싶으면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좋은 타자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올시즌 3B0S 상황에서 가장 많은 타수를 기록한 건 어느 팀일까. 넥센과 삼성은 나란히 가장 많은 11타수를 기록했다. 넥센은 4안타, 삼성은 3안타를 기록했다.

반면 롯데는 아예 타격 시도 자체가 없었다. 무조건 기다렸다. 0타수 0안타, 112타석 모두 볼넷을 골랐다. 벤치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K(2타수 무안타)와 NC(3타수 무안타) 역시 타격 시도가 적었다.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낸 건 LG였다. 7타수 5안타로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다. 타율로 치면 7할1푼4리다. 두산(8타수 4안타)과 한화(8타수 4안타)도 절반은 성공했다.

개인별로 보면 어떨까. 2안타 이상을 때려낸 이는 단 2명이다. 모두 팀의 4번타자다. 넥센 박병호는 2타수 2안타 18볼넷으로 3B0S 상황마다 웃었다. 기다려서 볼넷을 고르거나, 아니면 쳐서 나갔다. 볼카운트가 3B1S가 된 적이 없었다.

한화 김태균은 5타수 2안타 23볼넷을 기록했지만, 지난 7월 25일 롯데전에서 5-6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1사 1,2루에서 3B0S에서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공에 방망이가 나가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난 아픈 기억이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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