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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순위, 다른 느낌.'
지난해 넥센은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을 꿈꿨지만 후반기 시작 후 5연패와 3연패에 연달아 빠지며 6위까지 추락한 후 다시는 4강에 들지 못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데는 채 보름이 걸리지 않았다.
염 감독이 올해는 다를 것이라 자신하는 이면에는 분명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같은 순위이지만, 다른 느낌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올까?
염 감독은 전반기 내내 순위에 대해선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승리와 패배의 차이, 즉 승차에 대해서는 늘 눈을 부릅떴다.
선수들이 부담을 가질 수 있어 설정한 목표에 대해서 수치상으로 잘 밝히지 않던 염 감독도 16일 SK전을 앞두고 비로소 자신의 속내를 실토했다. "전반기 끝날 때까지 첫번째 목표는 승차가 최대 +10이었고, 두번째는 40승 선착이었다. 말 그대로 최대치 목표였다. 그런데 너무나 공교롭게 두가지 모두 달성했다. 후반기 레이스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역대로 40승에 선착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못 오른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또 승차가 +10 정도가 되면 최소 3~4위는 차지할 수 있다. 물론 올해는 최하위 한화가 3할대 언저리에 머물면서 전반적으로 상위팀들의 승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 기록이라면 어느정도 안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정한 목표였는데, 믿기 힘들 정도로 딱 들어맞았다. 염 감독은 "지난달 여러가지 팀내외 문제로 8연패에 빠졌을 때만 하더라도, 두가지 모두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선수들이 이를 이겨냈다. 후반기에도 분명 위기가 또 오겠지만 더 어려운 시기도 버텨냈다는 자신감은 우리 팀의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2루수 서건창이 부상으로 지난달 말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대체 멤버로 투입된 문우람 김지수 등이 마치 기다렸다는듯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전화위복이 됐다. 이제 어지간한 위기는 기회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돋보임은 적지만, 희생은 크다
넥센은 지난해 외국인 원투펀치에 대한 의존도가 8개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반기에만 나이트가 9승(2패), 밴헤켄이 7승(3패)으로 16승을 합작했다. 토종 투수 가운데선 김영민 정도가 5승(3패)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밴헤켄이 7승으로 같지만 6패나 되는데다 평균자책점도 3.44에서 4.30으로 훌쩍 뛰었다. 나이트는 6승(7패)에 머물고 있다. 반면 지난해 전반기 1승에 그쳤던 강윤구가 6승, 2승에 머물던 김병현이 5승을 올렸다. 타격에선 지난해 전반기 강정호가 19홈런으로 질주했지만, 올해는 16일 현재 11홈런에 머물고 있다. 박병호는 지난해 전반기 17홈런에서 이날까지 19홈런으로 큰 차이는 없다.
투타에서 1~2명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경향은 확실히 줄어든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그만큼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하는 결집력이 확실히 높아졌다.
염 감독이 후반기 상황을 더욱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염 감독은 "기록면에서 독보적인 선수는 적지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줬다. 나이트와 밴헤켄이 지난해와 같은 맹활약이 없었음에도 이 정도의 위치에 서 있다. 분명 후반기에 나아질 것이기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희망 포인트는 '희생'이다. 돋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을 불평없이 해냈다는 것이다. 염 감독은 "많은 선수들이 떠오르지만 특히 이정훈과 이보근 등 이른바 '추격조' 불펜투수들이 큰 점수차로 지거나 이길 때 투입이 돼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줬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수많은 역전승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로 불러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넥센이 꿈꾸는 첫 '가을야구'는 분명 지난해보다 좀 더 현실성 있게 다가오고 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