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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은 평범했다. 천적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위기를 넘어서는 방법은 탁월했다.
다저스는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역전에 성공했다. 타선은 6회까지 상대 선발 매디슨 범가너에게 2안타로 막혔다.
'쿠바산 괴물 신인' 야시엘 푸이그만이 안타를 기록했다. 푸이그의 1회말 선제홈런과 6회 우전안타가 전부였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었던 지난 4월 3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도 범가너에게 8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당했던 아픔이 재현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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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올시즌 샌프란시스코전 2경기에서 모두 패전을 기록했다. 데뷔전에서 6⅓이닝 동안 10안타를 맞고 3실점(1자책)하며 빅리그의 쓴맛을 봤다. 한 달여만에 등판한 5월 6일 원정경기에선 6이닝 8피안타 4실점으로 또다시 패전투수가 됐다. 이상하게 샌프란시스코만 만나면 안 풀렸다.
다저스와 지구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상대다. 많이 만날 수밖에 없고, 또 상대를 넘어서야만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낼 수 있다. 설욕이 필요했다.
사실 이날 류현진의 컨디션은 평범했다. 류현진은 '오늘 피칭은 어땠나?' 혹은 '오늘 컨디션은 좋았나?' 등의 질문에 "오늘 직구 구속은…" 이렇게 답하곤 한다. 직구 구속에 따라 자신의 피칭 내용, 그리고 컨디션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날 류현진의 직구 구속은 나쁘지 않았다. 89~93마일(약 142㎞~150㎞)를 기록했다. 하지만 코너에 몰렸을 때 나오던 95마일(약 153㎞) 정도의 공은 없었다. 전력피칭 시 이 정도 구속이 나올 때, 그때가 류현진의 컨디션이 최상으로 보면 된다.
직구 구속만 놓고 보면 평범했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1회 피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류현진은 1회 직구를 많이 던지면서 어깨를 달군다. 이날 자신의 공이 어떤지 파악해 가는 과정이다. 1회 직구 구속은 90~92마일(약 145~148㎞)을 기록했다.
이날 류현진은 단 2개만의 삼진을 잡아냈다. 모두 상대 선발투수인 매디슨 범가너 타석에서 나왔다. 공격적인 성향의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압도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코너워크와 상대 타이밍을 뺏는 노림수가 부족했다.
변화구도 상대 타자를 고려해 1,2회, 즉 경기 초반에 테스트를 거친다. 경기 전에 좋다고 생각했던 공을 많이 던지는 편이다. 이날은 1회 1사 후 마르코 스쿠타로에게 처음 던진 슬라이더가 우전안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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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류현진과 포수 A.J.엘리스가 생각했던 좋은 변화구는 커브로 보인다. 이날 던진 서클체인지업 19개 중 스트라이크는 단 7개에 불과했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은 좋지 않았다.
2회까지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 보단 커브를 많이 던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커브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류현진에게 6타수 4안타(2루타 2개) 4타점으로 강했던 '천적' 헌터 펜스에게 당했다.
이날 경기 전 A.J.엘리스는 "펜스가 류현진에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오늘 펜스를 잡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펜스가 류현진을 상대로 강점을 보인 구종과 코스는 피할 생각이다. 평소보단 다양한 방법으로 펜스를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선택한 공이 바로 커브였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커브는 상대의 타이밍을 뺏기에 효과적인 구종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회전이 먹히지 않았을 땐 떨어지지 않고 치기 좋게 들어간다. 이른바 '행잉 커브'다. 펜스는 바깥쪽 높게 들어온 커브를 가볍게 좌전안타로 만들어냈다.
류현진은 이후 파블로 산도발을 1루수 파울 플라이, 호아킨 아리아스를 유격수 땅볼로 유도하면서 아웃카운트 2개를 손쉽게 잡았다. 하지만 안드레스 토레스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맞고 1-1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토레스에게 맞은 공 역시 한복판으로 몰린 커브였다.
앞으로도 펜스와의 만남은 껄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2타수 2안타 1볼넷을 허용하며 맞상대 기록은 8타수 6안타(2루타 2개) 1볼넷 4타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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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실점은 분명 아쉬웠지만, 류현진은 위기가 올 수록 더욱 강해졌다. 흔들림 하나 없이 노림수로 위기를 돌파했다.
류현진은 3회 선두타자 그레고 블랑코에게 중전안타를 맞고 불안하게 출발했다. 블랑코는 한복판으로 몰린 직구를 빠른 카운트에서 공략했다. 류현진은 스쿠타로에게 3루수 앞 땅볼을 유도한 뒤, 버스터 포지를 우익수 뜬공으로 요리했다. 하지만 펜스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산도발에게 3루수 앞 빗맞은 내아안타를 허용해 2사 만루를 허용했다.
타석엔 이전 이닝에서 홈으로 쇄도해 득점을 올리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호아킨 아리아스 대신 투입된 브랜든 크로포드. 좌타자인 크로포드는 왼손투수에게 약해 이날 라인업에서 빠진 상태였다. 류현진과 맞대결에서도 6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류현진은 이런 크로포드를 2구 만에 높은 슬라이더로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크로포드에게 던진 초구는 직구였다. 먼저 바깥쪽 먼 곳으로 직구를 던져 상대 시선을 흔들었다. 그리고 좌타자에게 조금씩 멀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직구와 슬라이더의 조합이 좋았다. 원하는 곳에 정확히 제구되면서 의도한대로 승부를 마쳤다.
류현진은 5회 또다시 만루를 허용했다. 1사 후 포지에게 볼넷, 펜스에게 좌전안타, 산도발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해 만루 위기를 맞았다. 포지에게 던진 주무기 서클체인지업이 잇달아 바깥쪽으로 멀리 빠지면서 불안함을 노출했다.
펜스와 산도발은 흔들리는 류현진이 카운트를 잡기 위해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공을 넣자, 초구부터 방망이가 돌아갔다. 결과는 모두 깔끔한 안타. 편하게 던진 공은 언제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순간이었다.
다시 타석엔 크로포드가 들어섰다. 류현진은 이번에도 직구-슬라이더 조합을 꺼내들었다. 직구 3개를 바깥쪽으로 꽉 차게 던졌다. 볼카운트 1B2S에서 선택한 것은 역시 슬라이더. 86마일(약 138㎞)의 빠른 슬라이더는 직구 타이밍에 맞춰 나온 크로포드의 배트 중심을 비켜갔다. 투수 앞 땅볼, 류현진은 침착하게 포수 엘리스에게 송구하며 투수 앞 1-2-3 병살타로 위기를 탈출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