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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살다 보면 흔히 듣는 소리, 야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모창민은 "예전엔 한 타석 나가서 못 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젠 못 쳐도 다음 기회가 있다. 오늘 못 해도 내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백업선수는 기회에 대한 강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주전들에 비해 타석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작다 보니, 나갔을 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절박함은 대개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조급해져서 나쁜 볼에 손이 나가거나, 자기 스윙을 못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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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민이 자신의 타격폼을 만든 건 꾸준한 출전기회를 보장받은 상무 시절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많은 주목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뒤 3년이란 시간 동안 하지 못한 걸, 군생활 2년 동안 해낸 것이다. NC에 온 뒤로 타격폼을 바꿨고, 이젠 그 폼을 자기 걸로 정립했다.
광주일고-성균관대를 졸업한 모창민은 2008년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SK에 입단했다. 상위순번에서 나타나듯, 아마추어 시절부터 평가가 좋았다. 체격이나 힘이 좋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하는 모습에서 '대형 타자'의 자질을 본 것이다.
하지만 모창민은 성장하지 못했다. 프로 입단 후 수년간 2군에 머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일찌감치 기회를 잡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백업선수의 경우, 코칭스태프의 기대치가 제한돼 있어 지도에 있어서도 한계가 생길 때가 있다. 주전급 선수와 달리,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집중지도에도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선수가 제한된 기회나 많은 이들의 기대에 강한 압박을 받는 케이스다. 넥센의 4번타자로 성장한 박병호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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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트레이드 카드가 돼버린 박병호는 넥센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넥센 코칭스태프는 박병호에게 "삼진 당해도 좋으니, 마음껏 스윙하고 와라"는 주문을 했다. 박병호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던 것이다. 박병호 역시 "LG 시절엔 오랜만에 들어간 타석에서 못 치면 완전히 위축됐다"고 고백했다. 박병호의 경우엔 '못 치면 2군'이란 압박에 시달렸다. 자기가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최근 LG는 박병호 대신 남은 우타 거포 유망주, 정의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정의윤은 2005년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김기태 감독은 지난해부터 정의윤을 직접 챙기며 타격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김무관 타격코치 역시 정의윤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서서히 그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젠 아예 4번타자로 고정시켜놓고 믿음을 주고 있다. 김 감독은 "본인이 그만큼 연구하고 노력한 대가다. 4번 자리를 주는 것도 그만한 배경이 있다. 잘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윤은 LG 입단 동기 박병호가 잘 나갈 때, 많은 것을 물어봤다. 친구에게 돌아온 대답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감', '심리적인 부분'이었다.
'내일이 있다'는 생각,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은 선수들을 바꾼다. 물론 이들을 기용하는 데 실패할 경우, 모든 비난은 감독에게 쏠린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면, 좋은 선수를 얻게 될 수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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