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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 습득의 명과 암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3-06-20 10:53 | 최종수정 2013-06-20 10:53


SK 윤희상, LA 다저스 류현진. 스포츠조선DB

많은 구종을 구사하는 것은 당연히 투수에겐 이로운 일이다. 잘던지는 구종이 많을수록 투수는 상황과 타자에 맞게 공을 던질 수 있고, 타자는 투수가 무엇을 던질지 예상하기 쉽지 않게 된다.

그러나 투수가 하나의 구종을 배우는 일은 매우 힘들다. 실전에서 자기 마음대로 쓰기 위해선 보통 1년 이상 갈고 닦아야 한다고 한다. 잘 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구종도 있다.

습득력은 선수마다 다르다. SK 윤희상은 굉장한 습득력을 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배우자 마자 실전에 써먹었단다. 바로 커브다. 윤희상은 이전부터 커브를 던졌지만 110㎞의 구속이 마음에 안들었다. "난 아무리 빠르게 던지려고 해도 120㎞가 나오지 않았다"는 윤희상이 목표로 삼은 인물은 바로 KIA 김진우. 커브가 대표 구종인 김진우는 120㎞대의 커브를 던진다. 최고 130㎞를 찍기도 한다.

윤희상은 지난 주말 KIA와의 3연전 때 김진우를 찾아가 커브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16일 광주 KIA전서 중간계투로 등판했을 때 '김진우표' 커브를 던졌다고. "안치홍에게 진우형에게서 배운 빠른 커브를 던져봤는데 안타를 맞았다"고 했다.

윤희상이 포크볼을 독학으로 배운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좋은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우에하라 고지(보스턴)나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등 일본의 유명 선수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포크볼을 익혔고, 이젠 윤희상은 대표적인 포크볼러로 통할 수준의 포크볼을 던진다.

그는 그립보다는 투수가 어떤 느낌으로 던지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립은 선수마다 다르다. 손가락의 길이도 다르고 힘도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그립을 잡는다고 해도 똑같은 공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그립보다는 투수가 던지는 느낌이 중요하다. 어떤 느낌으로 던지는지를 듣고 그런 느낌으로 던지려고 한다"고 했다. 이번 '김진우표 커브'도 그립보다는 김진우가 커브를 던질 때의 손의 느낌을 배우려고 했다고. 윤희상은 "제대로 구사하게 된다면 110㎞대와 120㎞대의 두가지 커브를 구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LA 다저스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류현진은 자신의 주무기가 된 서클 체인지업을 금세 배워 화제가 됐었다. 데뷔때인 2006년 당시 팀의 대 선배였던 구대성에게서 배웠다. 빠른 직구에 커브 등 두가지 구종을 주로 썼던 류현진은 다른 구종이 필요했다. 구대성을 졸라 체인지업을 배운 것이 4월. 그런데 6월부터 실전에서 쓰기 시작했고, 류현진은 승승장구하며 그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그러나 새로운 구종을 배우는 것이 무조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KIA 양현종은 커터를 배웠다가 오히려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가 무너진 케이스로 꼽힌다. 부진의 이유가 커터 때문은 아니지만 영향을 끼쳤다는 것. 롯데의 이재곤도 한동안 부진의 늪에서 헤어지나 못했다. 2010년 싱커 하나로 8승을 거뒀던 이재곤은 2011년 커브를 연마해 한단계 더 성장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커브를 배우느라 자신의 대표 구종이었던 싱커가 무뎌졌다. 2년의 부진을 보인 이재곤은 올시즌 싱커의 위력을 되찾으며 5월말 1군에 올라온 이후 3승1패의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구종 하나에 투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으니 야구란 참 모르는 스포츠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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