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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지명타자로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최희섭의 붙박이 지명타자 기용, 왜?
KIA는 지난달 23일 김주형을 1군에 올린 뒤 1루수로 김주형을 내보내고 있다. 이 기간 최희섭이 1루수 미트를 낀 것은 두 차례에 불과하다. 지난 4일과 6일 부산 롯데전이 전부다.
최희섭은 이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 징검다리로 휴식을 취했다. 김주형 복귀 후 세 경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고, 이중 두 경기는 벤치에서 푹 쉬었다. 좋지 않는 몸상태에도 휴식 없이 출전해왔던 그에겐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그러다 3루수 이범호에게 햄스트링 문제가 터졌다. 지난해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만든 고질병. 결국 코칭스태프는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범호의 몸상태가 완전해지기 전엔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타선의 공격력을 감안하면, 복귀 후 3할1푼1리 3홈런 12타점으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김주형을 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최희섭의 짧은 휴식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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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이 도움을 청한 NC 이호준은 올시즌 최고 타자 중 한 명이다. 타율은 2할7푼4리로 낮지만, 9홈런 49타점을 기록중이다. 특히 타점 부문 1위를 달리면서 팀의 4번타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이호준은 나이가 들면서 1루수 미트 대신 벤치에서 다음 공격을 기다리는 지명타자로 변신했다. 오랜 지명타자 경험으로 자신 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보통 지명타자를 괴로워하는 야수들이 많다. 수비에 나가야, 경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수가 반복되는 흐름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지명타자는 수비 때 벤치를 지켜야 한다. 자신의 타순이 오지 않는 한, 공격 때도 크게 할 일이 없다.
최희섭도 지명타자 출전이 길어지자 고민이 생겼다. 팀 사정이 있으니, 지명타자 자리에 대해 연구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가장 잘 맞고 있는 지명타자인 선배 이호준에게 질문을 한 이유기도 했다. 이호준은 "덕아웃에서 투수의 공을 계속 보면서 머릿속에 밑그림을 그려라"는 기본적인 조언을 했다. 자신의 타석이 오기 전, 네다섯 타석을 집중하라는 팁도 줬다.
조언이 통했을까. 최희섭은 이날 4타수 2안타로 지난 5일 롯데전 이후 일주일 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안타 2개 모두 2루타였을 정도로 타격감이 좋았다. 7일 넥센전부터 4경기 연속 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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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메이저리거 출신인 최희섭이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수용하는 모습이 낯설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올시즌 그는 분명히 변화했다. 시즌 전부터 김용달 타격코치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통해 최적의 타격폼을 찾아갔다. 상체만을 이용하는 타격폼에서 힙턴을 이용해 하체를 이용하는 법을 깨닫게 했다.
'소통'을 통해 마음을 연 최희섭, 사실 시즌 초반엔 매서운 타격감을 과시했다. 캠프 때 노력한 대가를 얻는 듯 했다. 하지만 최희섭은 5월 들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4월엔 너무 좋고, 5월엔 너무 안 좋았다. 선수들은 1년 동안 시즌을 치르다 보면, 사이클이 있다. 못한 건 과거형이고, 어떻게 그걸 헤쳐나가는 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최희섭은 "4월엔 타석에서 누가 나오든 자신감이 있었다. 5월엔 내가 밀리는 게 보였던 것 같다. 잘 해보기도, 못 해보기도 했으니 6월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결국은 자신감 아니겠나"라고 힘주어 말했했다.
잘 맞는 타격감을 고수하기 위해 1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도 자른 최희섭이다. 삭발 후 '오히려 잘 됐다. 시원하다'고 느꼈다고. 최희섭은 "1년 내내 기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젠간 자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팀이 먼저 아닌가"라며 웃었다.
광주=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