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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프로 스포츠 감독들이 선수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얘기를 할 때 감독들 입에서 세트로 등장하는 말이 "우리가 선수 시절 젊었을 때는 말이야. 맞으면서 운동하고 부러지지만 않았으면 웬만한 통증을 꾹 참고 뛰는 근성이 있었는데…"이다.
선수들의 '꾀병'을 지적하자는 게 아니라 '악바리' 근성과 투지를 강조하려는 의미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주제에서 예외인 팀이 있다. 선두 삼성이다. 요즘 삼성의 분위기는 선수들이 내색하기도 전에 코칭스태프가 알아서 먼저 '열외'를 시켜준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 18, 19일 약체 NC와의 경기에서 막강 마무리 오승환을 일부러 출전시키지 않았다. 17일 NC전에서 2대1로 승리할 때 오승환은 시즌 10세이브를 챙겼다.
18일 경기에서도 삼성은 연장 10회초 3-2로 리드하면서 오승환을 마무리로 투입할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류 감독은 오승환을 쉬게 했다. 10회말 다시 동점을 허용하고 12회에 가서야 7대3으로 역전승했으니 오승환이 더욱 아쉬울 법했다.
17일 마무리 등판때 평소보다 많은 22개의 공을 던졌기 때문에 연투시킬 수 없었다는 게 류 감독의 설명이었다.
"요즘같은 판도에서 오승환이 연속으로 안나오면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냐고 팬들도 난리를 치겠지?"라며 껄껄 웃은 류 감독은 그럴 만한 사정과 선수운용의 전략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승환의 오른 허벅지 안쪽 근육통 때문이다. 근육통이라는 게 사실 등판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다. 류 감독은 "조금만 참고 출전하라고 하면 오승환이 그렇게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류 감독은 투수코치와 상의한 끝에 당분간 휴식을 주기로 했다. 이른바 소탐대실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류 감독은 "오승환의 경미한 부상은 1∼2일 쉬면 바로 좋아질 사안이다. 그런데 억지로 참고 출전시켰다가 파열되거나 덧나기라도 하면 10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면서 "눈 앞의 것에 급급했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고 설명했다.
19일 NC전에서 1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으로 잘나가던 1루수 채태인이 3회말 수비때 갑자기 교체된 것도 같은 이치다. 채태인은 3회초 득점을 올리는 베이스러닝을 할 때 왼쪽 허벅지가 살짝 뭉치는 느낌을 받았다.
벤치로 들어온 채태인의 상태를 체크한 류 감독은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느껴지면 무리할 필요없다"며 김태완과 교체했다.
2군에서 1군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불펜 요원 안지만 역시 류 감독의 여유만만 기용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초 안지만은 21일 LG전부터 등판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19일 2군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류 감독은 시간을 더 두고 보자며 노선을 변경했다.
류 감독은 "안지만은 시즌 개막 전 수술-재활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무리하게 가동하면 안된다. 안지만의 의견을 최우선시 하고 등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 페넌트레이스의 3분의1밖에 지나지 않았다. 길게 보고 팀을 꾸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삼성이 이처럼 잔부상에도 조급해하지 않는 것은 심창민 정형식 신명철 김태완 등 백업자원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다른 팀으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류 감독은 "박한이가 없을 때 정형식같이 잘 메워주는 선수가 있어서 부상으로 인하 표가 나지 않는다는 게 우리팀의 장점"이라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