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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끝까지 가야 결과가 정해진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다승 부문 단독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는 기쁨은 엄청나지 않을까. 그 주인공이 삼성 배영수라면 말이다.
느림의 미학이 돋보인다. 이날 경기 직구 최고구속이 148km까지 나왔지만 대부분의 직구는 140km 초반대 구속에 머물렀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구속, 구위도 평범했다. 왕년에는 강속구 하나로 상대 타자들을 손쉽게 잡아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스타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있다. 어쩔 수 없이 볼카운트 싸움을 어렵게 끌고갈 수밖에 없다. 5회까지 공을 104개나 던졌다. 하지만 침착했다. 타자와의 승부에서 상대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도 타자를 유인하는 등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식의 투구에 오히려 추격이 급했던 두산 타자들이 말려들었다. 승부 타이밍, 배영수의 결정구인 슬라이더에 제 스윙을 하지 못하고 공을 맞히는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10대0으로 이기든, 1대0으로 이기든 똑같은 1승인 것과 같이 완봉승이든, 5이닝을 던진 후 얻은 승리든 투수에게는 값진 1승이다. 특히, 2004년 17승을 거두며 다승왕을 차지하고 시즌 MVP를 수상하며 프로야구판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알렸지만, 2007년 팔꿈치 수술 이후 이렇다할 활약이 없어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투수에게라면 더욱 그렇다.
잠실=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