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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가자!'
프로 선수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어이없는 실책과 주루 미스는 경기의 질을 저하시켰고, 팬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인간 성장 단계로 비교한다면 NC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창 무르익을 30대에 접어든 기존 구단들과의 비교는 아직 섣부를 수도 있다.
결국 NC 김경문 감독의 말처럼 부딪히고 깨지고 쓰러지면서 거기서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는 미약하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분명 한 시즌이 지난 후에는 훌쩍 커 있을 것이다. '터지고 깨진' 막내의 한 달간 성장 스토리를 살펴본다.
NC는 1군 데뷔 후 2번째 경기에서 일찌감치 승리를 낚을 수 있었다.
3일 롯데와의 경기. 1-2로 뒤진 9회말 이호준의 2루타로 동점에 성공한 후 맞이한 1사 3루에서 이현곤이 좌익수 깊은 외야플라이를 날렸다. 어지간히 발이 느린 선수라도 홈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는데다 3루에는 대주자 박헌욱이 있었다. 하지만 박헌욱은 대부분의 NC 선수와 마찬가지로 프로 첫 데뷔 선수. 너무 정확히 언더베이스를 하려다보니 출발이 늦었는데다, 홈을 지키고 있던 롯데 포수 용덕한과의 블로킹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대선배와의 충돌이 부담스러웠을 터.
어쨌든 홈에서 아웃이 되며 결승점을 날렸고, 연장 10회 1점을 내주며 대역전극에 실패했다. 이 때의 실패에 대한 부담으로 연패는 계속 됐다. 11일 LG전에서 이재학의 호투로 창단 첫 승을 거둘 때까지 무려 7연패였다. 한화가 13연패를 당하는 바람에 그 충격이나 관심(?)은 비교적 적었지만, 두 팀이 프로야구판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아냥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막내라고 봐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약점을 잡히자 승수를 쌓는데 집중 타깃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심했던 것은 13연패를 당하고 있던 한화와의 3연전. 이 경기는 오히려 선두 경쟁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화는 당연히 1~3선발 카드를 뽑아든데다 투수진을 풀가동, 3연승을 가져갔다. 김경문 감독은 "사실 2경기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집혔다. 그게 경험의 차이였다"고 말했고, NC 배석현 단장은 "연패중이라 이해는 하면서도 막내를 상대로 좀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결국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고 회상했다.
솔직히 부끄럽고 죄송하다
NC는 쌍방울(현 SK) 이후 20여년만에 등장한 새로운 구단이기에 당연히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 2일 개막전에는 14164석의 마산구장이 모두 만석이 됐음은 물론, KBO에 출입하는 27개 언론사 가운데 25개사에서 기자를 파견하는 등 한꺼번에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했다. NC의 모기업인 엔씨소프트에서도 서울에서 1100여명이 50여대의 관광버스에 나눠타고 응원을 오는 등 그야말로 축제였다. 비록 롯데에 0대4로 패하긴 했지만 경기 중반까지는 대등하게 접전을 펼치기도 했다.
한동안 NC는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의 중심이었다. 모든 기록에 '창단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NC 최 현 홍보팀장은 "지난해 2군에 있을 때는 관심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데, 1군에 올라와서 완전히 생활이 달라졌다. 개막전을 전후로는 수백통의 전화가 몰리다보니 배터리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납득하기 힘든 플레이가 속출, 자멸하는 경기가 이어지면서 시선은 차가워졌다. 승리에 집착하기 보다는 상대팀이 만만히 볼 수 없도록 끝까지 쫓아가는 경기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개막전 이후 만원관중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내야석만 근근히 채우는 수준이 됐다. 평균 관중수도 절반으로 뚝 떨어져 7000명 수준이 됐다. 2년전까지 롯데가 보조구장으로 활용할 당시 롯데의 경기만 열렸다하면 관중석을 꽉꽉 채우던 '마산아재'들의 열기는 확실히 식었다.
김경문 감독이나 배석현 단장은 입을 모아 "솔직히 홈팬들께 가장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배 단장은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국내외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하면서 나름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차이가 클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늦지만, 바른 길을 간다
그렇다고 코칭스태프나 프런트에선 선수들을 힐난하는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특히 김 감독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일일이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해준다. 칭찬할 선수는 반드시 언급하지만,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인 선수에겐 절대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한다.
김 감독은 "경험많은 선수들이라면 싫은 표정만 지어도 알아서 잘 하지만, 우리팀은 새롭게 야구를 시작하거나 다시 기회를 잡은 선수가 대부분이다. 칭찬과 격려만 해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실수를 했다고 금세 빼버린다면 그 선수는 부담감으로 다시는 제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일단 쓰기로 했으면 우직하게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두산에서 김 감독을 보좌했고 NC로 자리를 함께 옮긴 박보현 매니저는 "기가 죽을까봐 선수들 야단도 못치는 감독님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울 때도 많다"고 했다. "1군 경험이 대부분 없다보니 호텔 사용 방법부터 짐 싸고 이동하고 쉬는 시간에 자기를 관리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모두 알려줘야 한다.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할 때도 많다"는 박 매니저는 "그래도 선수들이 군말없이 잘 따라오는 것을 보면 정말 착하다. 2년전 처음으로 팀을 만들었을 때는 한숨부터 나왔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성숙했다. 그래서 더 대견하고 보람을 크다"고 밝혔다.
믿음의 징후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4일 1위 KIA와의 경기에선 KIA가 9명, NC가 7명의 투수를 쏟아부을 정도로 물량전이 나왔지만, 결코 기죽지 않고 9회 동점까지 만든 끝에 창단 첫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민호 노성호 최금강 등 이름도 낯선 선수들이 KIA 강타선을 돌려세우는 것을 보면서 팬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든듯 희열을 느꼈다. 이름값에, 경력에, 상대팀의 실력에 미리 주눅들었던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 당당히 맞서는 플레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NC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팀 구성만으로도 버거운 과정에서 신축구장 문제로 창원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한 싸움이 예고된다. 배 단장은 "기대보다는 팀의 성장 속도가 늦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NC는 거침없이, 하지만 차분히 나가고 있다. 시간이 거듭되면서 훌쩍 성장할 NC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창원=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