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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좌완 선발 양현종이 달라졌다. 지난 2년간 마운드 위에서 늘 쫓기기만 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마운드 위에서 오히려 타자를 압도하면서 시즌 초반 실질적인 에이스로 팀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마운드에서의 자신감과 빨라진 승부 타이밍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양현종의 올 시즌 초반 호성적은 '진화'라기 보다는 '컴백'에 가깝다. 양현종은 이미 과거에 뛰어난 성적을 낸 선발투수였기 때문이다. 2009~2010시즌에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16승으로 팀내 다승 1위에 8개구단 투수 중 다승 2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래서 올해의 좋은 모습이 2009~2010시즌으로의 '컴백'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수치상으로도 양현종의 이런 자신감 회복이 입증된다. 무엇보다 타자와의 승부 타이밍이 빨라지면서 이닝당 투구수가 확 줄었다. 2011~2012 시즌의 양현종은 이닝당 18.8개의 공을 던졌다. 거의 19개에 가까운 공을 한 회에 뿌린다면 선발로는 버텨내기 힘들다. 5이닝으로 환산하면 94~95개에 육박하는 투구수가 나오기 때문에 양현종은 보통 5회, 길어야 6회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 양현종의 이닝당 투구수는 15.9개다. 지난 두 시즌에 비해 이닝당 거의 3개나 공을 덜 던진다는 뜻이다. 이러면 6이닝은 넉넉하고, 상황에 따라 7이닝 이상도 소화할 수 있다. 에이스급의 이닝이팅 능력이 되살아난 셈이다. 실제로 양현종은 올해 세 차례 선발에서 각각 6이닝-5⅔이닝-7이닝을 던졌는데, 21일 인천 SK전에서 기록한 7이닝 때는 고작 89개의 공밖에 던지지 않아 완투도 가능했다. 점수차가 워낙 많아 체력 안배를 위해 교체됐을 뿐이다.
참고로 12승에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했던 양현종의 2009시즌 이닝당 투구수는 16.8개였다. 올해 초 양현종의 호투를 '컴백'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감이 있다보니 적은 공을 던지면서도 효과적으로 타자를 제압하게 된 것이다.
향상된 제구력, 회복된 구위. 볼넷은 줄고 삼진은 늘었다
양현종의 부활을 나타내는 지표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삼진당 볼넷(K/BB) 비율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투수들의 제구력을 입증하는 지표로 쓰인다. 볼넷을 적게 내주고 삼진을 많이 잡아내는 투수,즉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이 수치가 높다. 반면 제구력이 흔들려 볼넷이 삼진보다 월등히 많다면 이 수치가 줄어든다.
올해 양현종의 K/BB 비율은 1.70(17삼진, 10볼넷)이다. 전체 14위로 대단히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2년간에 비하면 월등히 좋아졌다. 2011시즌 양현종의 K/BB 수치는 1.07이었고, 2012년에는 0.84밖에 안됐다. 지난해에는 볼넷이 삼진보다 20% 정도 더 많았다는 뜻이다. 지난 2년 통산 K/BB는 1.00으로 삼진과 볼넷이 똑같았다. 결국 올해의 양현종은 지난 2년간에 비해 K/BB 비율이 70%나 증가한 것이다. 그만큼 구위가 되살아나면서 제구력도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2009~2010시즌 한창 좋을 때의 양현종은 대표적인 '닥터 K', 즉 삼진을 많이 잡는 유형의 투수였다. 2009년에는 139개의 탈삼진으로 전체 4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삼진을 145개나 잡아내면서 전체 3위에 올랐다. 묵직하고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으로 타자를 힘으로 눌렀다.
이 시기에 양현종의 제구력이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시에도 양현종은 제구력이 정교한 유형의 투수라기 보다는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투수였다. 볼넷도 꽤 많이 나왔다. 그러나 구위가 뛰어나 삼진을 더 많이 잡았다. 그래서 2009시즌 양현종은 삼진 139개에 볼넷 58개로 K/BB 비율 2.40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삼진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볼넷이 많았는데, 그래도 K/BB 비율은 1.48(삼진 145, 볼넷 98)로 크게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올해 초반에 나타나고 있는 양현종의 좋은 모습은 2009~2010시즌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할 때와 흡사하거나 그 때보다 좀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2년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다시 과거 좋았던 모습을 되찾은 양현종이 과연 올해 어떤 이정표를 남길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