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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늘 말한다.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거야." 반만 맞는 얘기다. 안 맞으면서 크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과 투닥거리면서 더 크게 자라는 아이도 있다.
프로야구 KIA는 올해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지난 9일 광주구장에서 두산에 덜미를 잡히기 전까지 5연승을 내달렸고, 두산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6승2패로 여전히 리그 1위다. 이런 상승세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기대치 않았던 어린 투수들의 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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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표 역시 지난 3월 30일 넥센과의 광주 홈개막전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공 5개만 던지며 행운의 승리투수가 된 뒤 단숨에 팀의 필승조를 꿰찼다. 이후 박준표는 9일 경기 전까지 3경기에 나와 총 4이닝 1안타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3경기에서 삼진 5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단 1개도 내주지 않는 제구력과 두둑한 배짱이 돋보였다. 그래서 선 감독 역시 임준섭과 박준표에게 큰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9일 두산전에서 얻어 맞았다. 맞아도 꽤 심하게 얻어터졌다. 임준섭은 이날 선발로 나왔지만, 겨우 1⅓ 밖에 버텨내지 못했다. 그 사이 홈런 1개를 포함해 무려 6개의 안타와 4개의 볼넷으로 4점이나 잃고 말았다. 4월 치고는 다소 쌀쌀했던 날씨 탓인지, 초반부터 제구력이 크게 흔들리며 볼이 쏟아졌다. 1회에 던진 24개의 공 가운데 볼이 12개나 됐다.
박준표는 어땠을까. 우열을 딱히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다. 이날 박준표는 처음에는 잘 던지면서 필승조다운 모습을 보였다. 2-4로 뒤진 7회초 무사 1루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준표는 홍성흔과 오재원 허경민을 공 14개 만에 간단히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선 감독의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 타이밍이 다시 한번 돋보인 순간.
그러나 박준표는 4-4 동점이 된 8회초에 갑작스럽게 붕괴했다. 선두타자 양의지에게 볼카운트 2B1S에서 좌중월 솔로홈런을 맞은 데 이어 곧바로 후속타자 고영민에게 볼카운트 2B에서 또 좌월 1점홈런을 내줬다. 데뷔 후 처음으로 뼈아픈 연속타자 홈런을 내준 장면. 두 홈런 모두 볼카운트가 불리한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직구의 제구가 잘 되지 않으면서 장타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전까지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치던 두 젊은 투수가 한꺼번에 무너진 것은 KIA의 입장에서 큰 손실이다. 그러나 더 우려되는 것은 처음 겪는 실패가 이들 두 투수들에게 큰 데미지를 남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경험이 적은 젊은 투수들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신감과 배짱이다. 선 감독이 이들을 중용한 가장 큰 이유도 "거침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잃게되는 순간 이들의 장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때문에 임준섭과 박준표는 첫 실패를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어차피 시즌은 길고, 이들의 야구 인생은 훨씬 더 길 것이다. 한 순간의 좌절을 툭 털어버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실패와 좌절의 쓴 맛이야말로 루키를 대선수로 키워주는 보약이라는 점을 임준섭과 박준표가 9일 경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