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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리 표를 안 파노!"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 중 일부는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많아서인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야구장 밖에서 열린 프로모션 행사 도우미들의 춤사위 속에 조용히 현장이 정리됐다.
이 시각, 그라운드 안에선 상대팀 롯데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롯데 김시진 감독은 "이번에 사직구장은 2연전 모두 매진이 안됐다"는 취재진의 말에 "여기 두 번 매진돼야 우리 한 번 매진이네"라고 응수했다. 롯데의 사직구장은 마산구장의 두 배에 가까운 최대 2만8500명이 수용가능하다. 그래도 개막전이 주중에 열렸음을 감안하면 상반된 모습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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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팀인 만큼 NC의 구단 프런트 역시 '초보'다. 모든 게 첫 경험이다. 생갭다 준비를 잘 해왔다.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와 올해 시범경기를 통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내실을 다져왔다. 이날도 분명 '과정'의 일부였다. 하지만 몸을 낮추고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날 현장판매분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보였다. 마산구장에 휠체어석은 내야에 총 10석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따로 오픈하지 않아 현장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NC 측은 차례를 기다리는 장애인을 따로 불러 미리 티켓을 발권해줬다.
하지만 일부는 불만이 있었다. 작년엔 인터넷 예매를 가능하게 해줬는데 올해는 이를 막아 일찍 와서 티켓을 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NC 측도 애로사항이 있었다. 지난해 인터넷으로 예매를 오픈해놓으니 휠체어를 타지 않은 일반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NC 경영지원팀 심선엽 차장은 직접 고객의 불만을 듣고는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가장 바빴던 건 역시 마케팅팀이었다. 사소한 전광판 영상물 하나하나부터 행사 진행 전반을 총지휘했다. 또한 개막전을 맞아 현장을 찾은 여러 귀빈들의 이동 동선 관리는 물론, 야구장 안팎의 경호 역시 마케팅팀의 몫이었다.
NC 마케팅팀의 인력은 단 6명. 전날까지도 모든 준비를 마치느라 새벽 4시에 퇴근했다. 준비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 9시부터 다시 움직였다. 이날은 이벤트 대행사 인력까지 총동원돼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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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또 한 번 업그레이드가 됐다. 내야엔 스탠딩 응원석을 마련해 치어리더와 함께 경기 내내 응원전을 펼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었다. 비어있던 외야 광고판은 모두 채워졌고 내야 테이블석에도 스폰서 업체의 광고가 깔끔하게 프린팅됐다. '마케팅의 도구'가 된 프로야구답게 경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많은 광고가 들어와 최신식 구장의 구색을 갖췄다.
또한 첫 번째 시즌을 맞아 편의시설도 확충됐다. 외야에도 매점이 들어섰고 내야 관람석에도 매장 수가 늘었다. 경기장 밖엔 다이노스 카페도 생겼다. 매점이나 화장실을 가는 길에도 TV를 설치하는 '섬세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소주와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과거 마산구장의 풍경은 이제 추억이 됐다.
떨림과 설렘, 최고참 이호준도 바짝 긴장한 첫 경기
"모든 것이 처음이라 의미있네." 그동안 프로야구와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숱한 명경기를 치렀던 백전노장 사령탑이지만 첫 경기의 설레임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날 오후 2시쯤 일찌감치 경기장에 나와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꼼꼼히 지켜보던 NC 김경문 감독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난 1년간 2군 경기만 하며 한산했던 덕아웃이 마치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취재진으로 가득 차차 예전 생각이 난 듯 흐믓한 미소도 지었다.
김 감독은 "나도 이 정도 설레는데 선수들은 오죽할까"라며 "선수들이 만원 관중 앞에서 주눅들지 말고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첫 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좀처럼 징크스를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첫 경기 잘 치르라는 전화가 왔다. 예전에도 이 친구가 전화하면 승률이 좋았다. 왠지 기분이 좋다"라고 말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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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좋기로 유명한 주장 이호준은 방송 인터뷰 요청에 "너무 떨려서 그러니 오늘 하루는 빼달라"고 사양할 정도. 면도를 말끔하게 하고 나온 얼굴이 눈에 띈 이호준은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짧게 답한 뒤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2시간여의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오후 4시20분 전력분석실에 모두 모여 롯데 선수들의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식전 행사도 성대하게 치러졌다. 경기 시작 40분을 앞두고 NC 구단 상징인 공룡을 앞세운 '공룡기사단'이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외야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이어서 태극기와 구단기, '정의·명예·존중'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깃발이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해군 군악대도 현장을 빛냈다.
구장을 찾은 내외빈을 소개할 때 박완수 창원시장의 이름이 호명되자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겨울 불거진 9구단 유치 시 약속했던 신축구장 건립에 대한 논란 때문이었다. 뿔난 창원 야구팬들의 민심이 느껴진 장면이었다.
"마!" 사라진 마산구장, 롯데? 이젠 적이다
1군 엔트리에 속한 27명 전원은 호명에 따라 환호 속에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김택진 구단주의 개막 선언문과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꽃다발 증정, 그리고 시구와 시타로 공식행사가 마무리됐다.
NC는 야구 꿈나무인 '주니어 다이노스 스프링 챔피언십 2013' 초등부 우승팀 사파초등학교의 주장 이지원군(13)과 창원야구 최고령 원로인 김성길씨(88)를 시구, 시타자로 섭외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닌 창원야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이들의 의미있는 창단 첫 시구, 시타였다.
한편,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코리안특급' 박찬호도 마산구장을 찾아 NC의 개막전을 관전했다. 박찬호는 친정팀 한화의 홈 개막전에 초청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박찬호로 생각해 달라'며 한국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해 마산구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3일엔 대전구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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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롯데가 치르는 몇 경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창원 팬들에게 지역 야구단의 등장은 가장 큰 기쁨이었다. 지난해까지 자신들이 응원했던 롯데를 가볍게 버리고 열성적으로 NC를 응원했다. 롯데의 홈구장이 1년 만에 적지로 바뀐 것이다. 견제구가 들어왔을 때 외치던 "마!"라는 외침을 "쫌!"으로 바꿔 약간의 차별화(?)를 뒀다. 경기 내내 파도타기 응원전도 흥을 돋궜다.
홈측 외야석 3분의 1 정도는 이날 서울에서 온 NC다이노스의 모기업 엔씨소프트 임직원 1100여명으로 들어찼다. 오전 근무를 끝내고 낮 12시부터 순차적으로 50여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타 천리길을 달려온 응원단은 팀 모자를 함께 쓰고 카드섹션과 확성기를 겸하는 '클래퍼'를 손에 들고 창원팬들의 응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간식거리로 소비한 치킨만 600여마리. 엔씨소프트 조우리 차장(37)은 "22년 만에 새로운 구단을 만든 회사에 다녀 자부심이 생긴다. 야구의 도시인 창원에 직접 와서 관전하니 야구가 한층 재밌다"며 즐거워했다.
창원=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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