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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한 '괴물', 개막 2선발 확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위기를 이겨낸 자기 제어, 그리고 넉넉한 스태미너
우선 이날 류현진의 선발 등판에서 가장 돋보인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초반 제구력 난조에 의한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의연하게 극복했다는 점이다. 이날 류현진은 초반 제구력이 크게 흔들렸다. 1회초 선두타자 알레한드로 데 아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제구력 불안을 드러냈다.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키는 것은 선발로서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류현진의 선발로서 평가점은 낙제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류현진은 3회부터 '반전 드라마'를 썼다. 마치 극적 효과를 의도한 듯 3회부터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초반의 제구력 난조에 의한 실점 이후 오히려 강한 집중력으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류현진은 3회부터 7회까지 볼넷 한 개만 허용하는 '노히트 노런' 피칭으로 선발 임무를 깔끔하게 마쳤다. 1~2회와 3~7회의 류현진은 완전히 다른 두 명의 투수 같았다.
또 한가지 이날 류현진이 돋보인 점은 시범경기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선발의 미덕은 역시 최소실점으로 오래 버텨주는 데 있다. 메이저리그의 베테랑 에이스들의 경우 초반에 잠시 위기를 겪다가도 곧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적어도 6회 이상 버텨주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이날의 류현진이 그랬다.
1, 2회의 위기가 오히려 약이 되면서 류현진은 3회부터 안정적인 제구력과 특유의 직구, 커브, 체인지업 등을 무기로 경제적인 피칭을 했다. 7이닝 동안 류현진이 던진 공은 98개 밖에 안됐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이 평균 100~110개 정도의 공을 던진다고 보면 적어도 8회까지, 조금 더 힘을 낸다면 완투도 가능했다는 뜻이다. 7이닝 투구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류현진이 기록한 최장 이닝 투구다.
더불어 류현진은 24일 현재, 총 6경기에서 23⅓이닝을 던져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25이닝)에 이어 팀내 투수 중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버텨줬다. 선발의 중요한 덕목인 '스태미너'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내용이다.
선두타자 출루만 보완한다면…
LA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은 개막전 선발을 커쇼로 이미 예고했다. 그러나 개막 두 번째 선발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류현진과 채드 빌링슬리 가운데 한 명을 개막 2선발로 낙점하겠다는 것이 매팅리 감독의 생각이다. 기회도 공평하게 줬다. 이날 류현진과 동시에 빌링슬리도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 팀과의 연습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그러나 빌링슬리의 성적이 류현진에 못 미쳤다. 빌링슬리는 이날 4⅔이닝 동안 4안타 4볼넷 7삼진으로 2실점했다. 일단은 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 호투한 류현진이 더 큰 가산점을 받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더군다나 빌링슬리는 지난 16일 팀내 번트 훈련 중 검지손가락을 살짝 다쳐 현재 커브 구사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류현진은 현재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2선발 낙점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조금 더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선두타자 출루율을 낮춰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숙제라고 볼 수 있다.
이날 화이트삭스전에 류현진은 1회와 2회 그리고 4회에 선두타자를 내보냈다. 이중 1회와 2회는 모두 점수로 연결됐다. 믿음직한 선발 투수로서 조금 더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런 선두타자 출루를 낮출 필요가 있다. 볼넷으로든, 안타로든 일단 선두타자를 내보내는 것은 선발투수가 가장 보여주지 않아야 하는 모습이다.
일단 선두타자의 출루는 공격을 하는 팀에 득점을 위한 다양한 작전을 펼 수 있도록 해준다. 아웃카운트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 희생번트로 득점권에 내보낼 수도 있고, 발이 빠른 주자라면 단독 도루 기회도 열린다. 어떤 형태가 됐든, 공격팀이 할 수 있는 작전이 많아진다는 것은 반대로 수비의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커진다는 뜻이다. 상대의 다양한 작전에 모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투구수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선발투수의 한 경기 투구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투구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소화 이닝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때문에 선두타자부터 보다 공격적으로 승부해 투구수를 줄이고, 보다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 뿐만 아니라 등 뒤의 동료 수비들을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