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이한 일이다. 한 팀의 중심선수가 소속팀 전지훈련에 참가할 수 없게 됐는데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개인 전지훈련을 떠나게 했다.
SK 좌완투수 박희수 얘기다. 박희수는 송은범 김광현 등 동료 5명과 함께 미국 애너하임에서 재활치료를 마치고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로 가려했으나 체성분 테스트에서 불합격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만수 감독은 체성분 테스트 탈락자를 전지훈련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미 국내 체성분테스트에서 박경완 최영필 전유수 등이 탈락해 플로리다 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6명의 투수들이 모두 불합격하자 이 감독은 자신이 정한 규정을 번복할 수 없었다.
박희수는 체성분테스트에서 불합격해 SK 플로리다 캠프 합류가 불발됐지만 양상문 대표팀 수석코치와 함께 대만에서 개인훈련을 하게 됐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그런데 다른 5명의 선수는 문제가 없었지만 박희수는 달랐다. 박희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다. 대회가 열리는 3월에 전력피칭을 해야하기 때문에 추운 국내에서 훈련하는 것은 어렵다. SK는 KBO에 박희수의 귀국 소식을 알렸고, KBO는 류중일 WBC 대표팀 감독과 상의를 해 양상문 수석코치와 박희수를 먼저 대표팀의 전지훈련지인 대만으로 보내기로 했다. 양 코치와 박희수는 30일 오전 출발해 대만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성균관대 선수들과 훈련을 한다.
SK가 체성분 테스트를 한 것은 선수들의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것이다. 전지훈련에서 곧바로 기술훈련에 들어갈 수 있는 몸상태가 돼 있는지를 보는 최소한의 잣대라고 할 수 있다. LG도 비슷한 테스트를 했다. 4000m 달리기였다. 나이와 개인별 달리기 실력을 고려해 커트라인을 18분, 19분, 20분으로 정했는데, 우규민과 이동현이 20분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했다. 우규민은 2초가 늦어 사이판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기준에 살짝 못 미쳤다고 전지훈련 참가를 막는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2초 늦은 우규민이 사이판에서 다른 선수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체지방 1㎏이 많다고 해서 치고 달리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전지훈련 전에 몸만들기를 끝내라는 감독의 강한 압박이다.
LG 선수들이 7일 4000m 달리기를 하고 있다. 이날 테스트에서 우규민과 이동현이 탈락해 사이판 전훈에 가지 못하게 됐다. 잠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한국의 전지훈련 방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한국의 전지훈련은 따뜻한 곳에서 체력훈련부터 기술훈련, 연습경기까지 모두 다했다. 1월초에 떠나서 2주 정도 체력훈련을 한 뒤 기술훈련에 들어가고 막바지에 연습경기를 했다.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여러 이유로 전지훈련 출발일이 늦어지고 기술 훈련을 하는 시간보다는 연습 경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한다. 선수들이 전지훈련 전에 몸을 만들어 와야하는 상황이 됐다. 올해의 경우 대다수 팀이 20일에 출발했다. 예전에 비하면 2주 이상 늦은 출발이다. 체력 훈련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선수들이 예전처럼 전지훈련지에서 몸을 만들 생각을 하면 전체적인 일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SK와 LG가 주전들까지 탈락시켜가면서 테스트를 하는 이유는 선수들에게 자율적인 훈련을 강조함과 동시에 효율적인 전지훈련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감독들이 외국인 선수들의 준비상태를 칭찬하는 것을 더러 볼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이 몸만들기를 하고 있을 때 외국인 투수들은 이미 몸을 만들어와 불펜피칭을 하는 것은 그리 생소하지 않다. 외국인 선수들은 각자 개인훈련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스프링캠프에 대비해 곧바로 던질 수 이는 몸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일본도 전지훈련에서 체력훈련은 없다. 전지훈련을 시작하는 2월 1일부터 강도높게 훈련을 한다. 투수들은 첫날부터 불펜에서 공을 던진다. 몸을 만들지 않으면 팀 스케줄을 따라잡을 수 없게 돼 있다.
국내 선수들도 최근엔 전지훈련 전에 개인적으로 따뜻한 곳으로 가서 몸만들기 훈련을 하는 선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한국 프로야구도 미국과 일본처럼 구단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진짜 프로가 되고 있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