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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2일. LG로선 악몽같은 날이다. 5-3으로 앞서던 9회 마무리 봉중근의 블론세이브. 연장 승부 끝 역전패 여파는 1패 이상으로 컸다. 올 시즌 첫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봉중근은 덕아웃 뒤에 있던 소화전을 쳐 오른손 뼈가 부러졌다. 소화전 탓에 소방수를 잃은 그날 이후, LG호는 속절 없이 추락했다. 4강 꿈은 타이어 바람 빠지듯 조금씩 사그러들어 더는 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역사가 10년 연속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조계현 수석코치는 "서로 치겠다고 경쟁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타자용, 투수용 하나씩 따로 만들었다"며 껄껄 웃었다. 홈구장에서만 실시하는 단순 이벤트가 아니다. 원정 덕아웃에도 설치한다. 조 수석코치는 "오뚝이 인형이라 바람을 빼고 데리고 다니면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팬들은 화풀이 장면을 볼 수 없다. 선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오뚝이를 밖에서 안보이는 덕아웃 출입문 안쪽에 둘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유머러스한 상징을 통해 전환을 시도한 사례. 실패와 실수는 부끄러운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담겼다. 아픈 기억을 애써 외면하기 보다는 웃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사실 결과가 안 좋았을 뿐 '봉중근 사건'은 어느팀, 어느 선수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오뚝이 인형 덕아웃 배치 결정. 실제 기능보다 행간 속에 읽히는 상징에 무게가 실린다. 조계현 수석코치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부상 당하지 말라는 차원과 함께 오뚝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느껴보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오뚝이란 상징을 통해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쓰러질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잘 달리다 번번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상처를 입었던 지난 10년. 과거는 과거다. 바꿀 수 없다.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의 삶을 모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는 김 감독의 신년 메시지가 바로 오뚝이 속에 숨어 있다. 시무식 첫날 출입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오뚝이 프로젝트'를 일부러 언급한 이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