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야구인 사회공헌 활성화, '재단설립'도 방법이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11-26 11:27 | 최종수정 2012-11-26 11:27


2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15회 꿈나무 야구장학생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장학금 전달식에서 박찬호가 초등학교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2.11.25.

냉정히 말해 대한민국 사회에 '분배'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10년 남짓이다. '경제 성장'과 '반공'의 정서로 국민을 억압했던 군사정권 시대는 두말할 것 없고,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보려던 '문민정부' 시대에도 여전히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심지어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전 정권이 떠넘긴 외환위기(IMF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눔'과 '봉사', '분배'등의 가치가 인식되기 시작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나눔에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외형적인 성장과 실적, 개인의 성공이 훨씬 더 중요하게 인식되곤 한다. 다행인 점은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이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스포츠, 나눔에 너무 소극적이다

하지만 스포츠계, 특히 성적이 곧 돈과 연계되는 프로스포츠는 여전히 나눔에 소극적이다. 아직도 프로선수들의 목표는 성적의 향상을 통해 몸값을 늘리는 데에만 맞춰져 있다. 뛰어난 성적을 통해 수억에서 수십억에 달하는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성공한 선수'라고 불리면 거기서 끝이다.

그런데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억원의 몸값은 바로 팬들로부터 받은 성원에 기초한 것이다. 때문에 프로선수들에게는 반드시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할' 소명이 존재한다. 이를 외면하는 것도 크게보면 배임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성공에서 그칠 뿐 그 이후가 없다. '성공 이후의 나눔'에 대해 인색한 것이다.

한국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FA의 활성화로 매년 말 수십억원 대의 대형 계약을 맺는 선수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다. 또 몇몇 선수들은 해외 리그에 진출하거나 다시 돌아오면서 또 엄청난 거액을 벌어들였다. 이른바 '스포츠 재벌'의 탄생이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선수 가운데 '자발적인 사회공헌'에 참여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시즌 종료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각종 기부행사나 자원봉사 현장으로 달려가는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의 모습과는 대비된다.

선행은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지적에 대해 반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들었다. 한 야구인은 "외부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봉사나 기부를 하는 선수들도 많다"고 항변했다. 맞는 말이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숨은 선행'을 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런데 왜 이들은 꽁꽁 숨은 채 선행을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야구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선수들은 그런 활동(기부나 봉사)을 알리는 것을 꺼려한다. 언론에 알려지거나 하면 어쩐지 너무 튀거나 잘난 척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우려해서다. 실제로 봉사를 한다는 얘기가 알려진 뒤에 '야구나 잘하라'는 식의 악플이 달려 괴로워하는 경우도 봤다"

한국 사회가 '나눔'에 관해 갖고 편견이 잘 드러난 이야기다. 과거부터 한국사회에는 '선행은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배어있었다. 살기 팍팍했던 시절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동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어려운 살림을 쪼개고 쪼개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날개없는 천사'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들은 늘 베일 뒤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봉사와 나눔은 가리고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널리 알려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특별한 것이 아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향약의 4대 강목 중 하나인 '덕업상권(좋은 일은 서로 권유한다)'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그런 측면에서 프로야구 스타들의 사회공헌이 더 활발해지고, 외부로도 많이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아이콘 역할을 할 수 있는 야구스타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공헌에 나서면 그 파급효과도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재단 설립을 통한 공헌활동도 방법이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일단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공식적 활동 금지기간인 12월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들은 1년 내내 팀훈련이나 개인훈련에 시간을 투자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사회공헌 활동이나 기부에 대한 인식이 있어도 막상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또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재정이 넉넉치 못한 선수도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재단설립'을 통한 사회공헌활동도 고려할 만 하다. 재단 설립의 요건이 좀 까다롭고, 초기 출자금이 필요하긴 해도 그 파급력이나 편의도는 엄청나게 크다. 올해로 15회째 장학생을 배출한 '박찬호 장학재단'이 좋은 본보기다. 박찬호는 LA다저스 시절인 지난 97년 '박찬호 장학회'를 설립했는데, 당시 출자금은 1억원이었다.

이 '1억원'이 씨앗이 되고, 좋은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올해까지 15년 동안 수많은 '박찬호 야구장학생'을 배출해왔다. 대단히 모범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호 장학생' 중에는 김태균(한화)이나 송은범(SK)등 현재의 정상급 스타도 있다.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또 다른 스타를 키워낸 것이다.

이미 국내에는 박찬호 뿐만 아니라 홍명보 감독이 설립한 '홍명보재단', 역도스타 장미란의 '장미란재단' 등이 있다. 야구 스타들도 이런 형태의 '재단설립'을 통한 사회공헌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수십억원 대의 초대형 FA계약을 성사시킨 선수들의 경우나 오랜 시간 꾸준히 야구계에서 사랑받아 온 명망있는 베테랑 스타들이 참여할 만 하다. 초기 자금이나 행정적인 부분이 부담스럽다면 마음이 맞는 선수들끼리 좋은 멘토를 찾으면 된다. 이런 방면에 관한 멘토들은 사회 곳곳에 있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많다.

사랑은 돌고 돌아야 한다. 이제 우리 야구스타들도 사회공헌활동을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700만 야구팬이 모아준 사랑을 다시 사회에 베풀 때 더 큰 성원과 사랑이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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