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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류중일, 마침내 선동열의 그늘을 벗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2-11-01 21:15


지난해 삼성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아시아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했다. 류중일 감독(49)은 지휘봉을 잡은 첫 해 국내외 무대를 휩쓸었다. 냉정한 팬들은 류 감독을 칭찬하면서도 선동열 전 감독(49·현 KIA 감독)의 후광을 얘기했다. 2010년까지 삼성을 지휘한 전임 선 감독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류 감독이 따먹었다고 했다. 류 감독은 그런 시선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2012년 한해 농사를 짓고 나서 다시 평가를 받기로 했다.

구단은 2011년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팀 슬로건으로 'Yes, one more time(한번 더)'을 내걸었다. 선동열 감독도 삼성 지휘봉을 잡은 첫 해(2005년)와 두번째 해(2006년) 연달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류 감독의 삼성은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에 7대0 완승을 거두며 4승2패로 우승했다.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2년 연속 통합 우승이다. 이젠 누구도 '선동열의 그림자'를 말할 수 없게 됐다.

류중일 감독의 위업과 함께 삼성은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에 이어 다섯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이제 삼성을 21세기 최고의 팀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바야흐로 삼성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회초 1사 1,3루에서 최형우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은 삼성은 4회초 박석민의 2점 홈런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끌어왔다. 이승엽은 4-0으로 앞선 가운데 이어진 2사 만루에서 3타점 싹쓸이 3루타를 터트려 SK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1차전에서 결승 2점 홈런을 쏘아올린데 이어 이날 쐐기타를 터트린 이승엽은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다.

삼성의 우승은 시즌 초반 지독한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더 값지다. 류 감독은 시즌 초반 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들이 잘 하는 '지키는 야구'에다 화끈한 타격까지 가미된 '명품 야구'를 하고 싶었다. 감독의 그런 욕심은 몸이 덜 풀린 삼성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 첫 두 달 동안 7위까지 떨어졌다. 치고 올라올 듯 하면서도 연승 바람을 타지 못했다. 6월초까지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전년도 챔피언에게 4강 문턱마저 힘겨워 보였다. 팬들은 부진한 최형우 배영섭 채태인을 빨리 2군으로 보내라고 감독을 향해 성토했다. 전년도 타격 3관왕 최형우는 두달 가까이 홈런을 하나도 치지 못했다. 2011년 신인왕 배영섭의 타율은 2할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1루수 채태인은 한화전에서 본헤드 플레이로 팬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돼 '멘붕' 상태까지 갔다.

류 감독은 심판이 석연치 않은 판정을 해도 어필조차 하지 않는다 하여 '관중일'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구단 게시판을 도배했다.

사령탑에 오르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류 감독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얘기를 들어주고, 들려준 사람이 송삼봉 삼성 단장이다. 송 단장은 "20년 이상 봐온 류 감독이 왜 날 감독을 시켜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투정을 자주 부렸다"면서 "그래도 감독 되고 나서 3관왕도 해보고 좋았잖아. 우리 선수들 믿고 참고 기다리자"라고 했다. 송 단장은 류 감독과 경기 뒤 소줏잔을 기울이는 술친구다.


20년 가까이 함께 한 송 단장은 류 감독의 매력으로 '착하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경상도말로 '숨쿠는게 없다(숨기는 게 없다)'고 했다. 스타 출신 감독이지만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류 감독이 마냥 부드러운 남자는 아니다. 야구는 물론이고 골프, 바둑, 장기 심지어 오목까지 모든 승부에서 지길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야구를 처음 시작하던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작고)와 내기를 해 용돈받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서 요즘도 시즌 초면 항상 선수들과 재미삼아 타율이나 홈런, 승수 등으로 내기를 건다.

그는 선수 시절 좀더 야구를 화려하게 잘 하지 못한 걸 늘 아쉬움으로 갖고 있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명품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수비 하나는 끝내줬지만 방망이가 수비 솜씨에는 못 미쳤다. 선수 은퇴 이후 삼성의 말단 코치로 시작, 2010년까지 10년 가까이 김응용 감독, 선동열 감독 등을 모시면서 주루 작전 수비 코치를 지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욕심내지 않고 오치아이, 김태한 투수코치, 김한수 타격코치 등의 도움을 받았다. 대신 최종 결정은 단호하게 내렸다.

올 시즌 팬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자존심을 꺾었다. 최형우는 4번 타순에서 내렸고 2군에도 보냈다. 타격감을 찾지 못한 채태인은 결국 후반기부터 1군에서 자취를 감췄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어 선수들의 마음을 샀다. 또 결국 열혈팬들이 원했던 대로 모두 해줬더니 비난 여론이 잠잠해졌다.

류 감독은 이제 겨우 두 시즌 삼성을 지휘했다. 그런데 벌써 우승 트로피를 5개 모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아시아시리즈 2연패에 도전한다.

류 감독은 삼성과 내년말까지 계약돼 있다. 지금까지 삼성의 선택은 옳았다. 이제 그의 나이 49세. 25년 동안 한결같이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다. 또 그는 삼성 야구의 미래를 10년 이상 책임져도 괜찮을 지도자로 끊임없이 진화해가고 있다. 호남을 대표하는 선동열 KIA 감독과의 진검승부는 내년이 될 듯 싶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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