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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늘 아프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파도 '너~무' 아프다. SK의 플레이오프 2차전 패배가 '1패 그 이상'의 크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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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SK는 강력한 불펜진 덕분에 수많은 승리를 지켜냈다. 올해 SK가 거둔 71승 가운데 27승은 구원 투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승리다.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승수다. 더불어 팀 세이브도 40개로 이 역시 8개 구단 중 1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불펜이 견고했다는 증거다.
일반적인 'SK 승리공식'에 따르면 엄정욱의 뒤를 잇는 역할은 박희수가 맡게 된다. 박희수는 올 시즌 8개 구단 최강의 '미들맨'으로 자리매김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역대 한 시즌 최다홀드(34홀드) 신기록을 달성하며 역대 최강의 '필승계투'로도 공인받았다. 올해 박희수는 팀내 최다인 65경기에 나와 8승1패 6세이브 34홀드, 평균자책점 1.32로 어마어마한 위용을 과시했다. 보통의 경우, 박희수가 뜨면 상대팀은 그 자체로도 추격 의지를 상실하곤 한다.
SK 마지막은 대부분 '필승 마무리' 정우람의 몫이었다. 지난해 말 정대현이 FA로 팀을 떠난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마무리 역할을 맡게된 정우람은 '클로저 1년차'임에도 상당히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다. 5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하며 2승4패 30세이브를 남겼다. 세이브 부문 전체 5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렇게 개별 프로필만으로도 위력적인 이들 세 투수가 한 경기에 등판할 때가 있다. 'SK 승리공식'이 최종단계까지 가동되는 케이스다. 이러면 대부분 SK가 이기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공식은 결국 롯데 타선에 이해 와해되고 말았다.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더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이 조합이 언제나 '100%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세 투수가 모두 나와 실패한 케이스는 딱 2차례 있었다. 5월 10일 잠실 두산전과 6월 9일 인천 삼성전이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들의 선발은 모두 윤희상이었다. 두산전에는 윤희상(4⅔이닝 7안타 5실점)-엄정욱(2이닝 3안타 무실점)-박희수(⅔이닝 3안타 2실점)-정우람(1⅓이닝 2안타 2실점, 패) 순으로 나왔고, 삼성전에는 윤희상(6⅓이닝 7안타 2실점-비자책)-박희수(1⅓이닝 1안타 무실점)-정우람(⅔이닝 4안타 3실점, 패)-엄정욱(⅔이닝 무안타 무실점) 순으로 가동됐다.
그러나 이 조합의 패배가 하필이면 중요한 플레이오프에서 나왔다는 게 심상치 않다. 정규시즌의 1패와 포스트시즌의 1패는 그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 포스트시즌에서 1패는 곧바로 탈락과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 필승 3인방을 내고도 진 SK 벤치의 동요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심리적 동요가 향후 포스트시즌 투수 운용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플레이오프 2차전 패배를 보약삼아 한층 더 치밀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투수 기용의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다.
더불어 SK 필승조의 와해에 의한 역전패가 더 커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상대 타자들의 마음속에 'SK 필승조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강력한 불펜이나 마무리는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상대를 위축시키곤 한다. 과거 해태 마무리 선동열이 그랬고, 현재 삼성 오승환이 그렇다. 구위가 좋았을 때의 삼성 정현욱이나 안지만, 권오준 역시 마운드에 서면 상대로 하여금 '따라잡기가 어렵겠군'하는 낙담을 토해내게 했다.
올해 SK의 필승 3인방도 이와 비슷한 위용을 보여줬다. 그런데 롯데 타선이 이를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당장에 롯데 타자들이 '붙어보니 별 것 아니네'라는 자신감을 공유할 수 있게됐고, 나아가 한국시리즈에 미리 올라있는 삼성 타선도 '롯데도 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점들이 SK의 이번 역전패를 더 아프게 부각시키는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