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입장에선 번트처럼 쉬워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번트를 대는 선수들은 절대 쉽지 않다고 고개를 흔든다. 꼭 해내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다, 상대가 대부분 미리 알고 대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타를 노리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다.
전 코치는 번트를 댈 때 "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슴이 향해야 하고, 보내고 싶은 거리에 따라 맞히는 방망이의 위치와 손목 각도도 달라야 한다"고 자신만의 번트 기술을 설명했다. 손목과 팔로만 대려고 하면 정확하게 보내기가 힘들다는 얘기. 그러나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 가슴으로 타구방향을 향하려면 그만큼 몸이 공에 근접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부상의 위험도 있다.
배트의 어느 부위에 맞히느냐에 따라 타구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속도를 많이 죽여야 할 때는 방망이 끝에 맞히도록 하고 빠르고 멀리 굴려보내기 위해서 밀어낼 때는 팔꿈치 각도를 잘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각도 조절은 많은 훈련을 통해 본인이 터득해야 하는 것. 전 코치는 프로 데뷔후 롯데 시절 스프링캠프에서 하루에 500∼700개의 번트연습을 했다고 했다. 그만큼 번트도 충분한 훈련량이 필요하다.
최근엔 번트에 대한 수비 시스템이 워낙 좋아서 더욱 대는 것이 힘들어졌다. 1루수와 3루수가 투수가 공을 놓음과 동시에 전력으로 대시해 선행주자를 잡아내는 '100% 번트 수비'가 있고, 1루수나 3루수만 앞으로 뛰어들고 나머지 비는 곳을 투수가 커버하는 '50% 번트 수비'도 있다. 상대의 수비 작전에 따라 번트를 대는 척하다가 강공으로 바꾸는 공격법도 있다.
큰 경기에서는 번트 하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두산은 9회말 동점찬스를 맞았지만 기억조차 하기 싫은 번트 실패로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주자를 못 보낸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인 '번트 병살타'가 나와버렸다.
무사 1루서 4번 윤석민이 초구에 희생번트를 댔다. 1-2로 1점차 뒤진 상황에 무사 1루라 100% 번트가 예상됐고 윤석민은 처음부터 공공연히 번트자세를 취했다. 물론 번트가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4번타자이니 만큼 '강공으로 갈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상대를 헷갈리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윤석민이 댄 번트 타구는 최악이었다. 자로 잰듯 한가운데 투수 정면으로 흘렀다. 그나마 투수 정대현까지 가기도 전에 먼저 따고 들어온 3루수 황재균이 낚아챈 게 더 나빴다. 정대현의 투구와 함께 뛰어든 덕분에 투수보다도 먼저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지체없이 2루로 던져 1루주자를 아웃시켰고, 유격수 문규현이 1루에도 정확히 던져 순식간에 2아웃이 됐다. 만약 정대현이 잡았다면 1루주자 민병헌의 빠른 발을 생각해 2루 승부대신 1루로 던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황재균의 빠른 대시가 승부를 갈랐다.
잠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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