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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 21년 구리야마 니혼햄 감독의 우승 스토리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10-03 09:55 | 최종수정 2012-10-03 09:55


2일 리그 우승이 확정되자 니혼햄 선수들이 구리야마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출처=스포츠닛폰 홈페이지

선수 은퇴 후 구단 주선으로 잠시 해외 연수를 갔다 온 뒤 일정기간 동안 코치 경험을 쌓고 사령탑에 취임. 일반적인 국내 프로야구 감독의 경력을 살펴보면 대개 이렇다. 물론, 코치로서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선수시절 화려한 경력이 지도자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타 선수 출신은 자의식이 강해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 프런트로부터 신망을 얻어야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치직은 선수의 틀을 깨고 지도자 자질을 평가받는 첫 관문이다. 코치와 감독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만 유능한 코치가 감독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코치 경험이 전혀 없는 방송 해설자 출신 감독이 취임 첫 해에 팀 우승을 이끌어 화제다.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51)이 주인공이다.

2일 퍼시픽리그 우승을 확정한 니혼햄의 구리야마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사상 17번째로 사령탑 첫 해 정상에 선 지도자이다. 구리야마 감독은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센트럴리그의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주로 외야수로 뛰었다. 7시즌 동안 49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7푼9푼, 7홈런, 67타점을 기록했으니 그저그런 선수라고 봐야할 것 같다. 100안타 이상을 기록한 게 두 시즌에 불과하고, 부상이 이어지고 주전 경쟁에 밀려 29세에 유니폼을 벗었다.

그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크게 성공을 꿈꾸었던 것 같지도 않다. 구리야마 감독은 국립 도쿄가쿠게이대학 시절 투수와 중심타자로 활약을 했으나 학업을 병행해 교사자격증까지 땄다. 졸업후 교사가 될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테스트를 거쳐 야쿠르트에 입단한 뒤에는 프로 수준이 높다는 걸 깨닫고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유격수로 1군 무대에 첫 발을 디딘 구리야마 감독은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는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 그는 방송해설자로 나섰다. 1991년부터 지난해 11월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 후임으로니혼햄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아사히 TV와 TBS에서 줄곧 야구를 해설했다. 구리야마 감독은 야구 해설자이면서 동시에 대학교수였다. 2004년 하쿠오대학 조교수가 된 그는 2008년 정교수로 승진해 경영학부에서 스포츠미디어에 관해 강의를 했다. 야구와 밀접한 삶은 이어갔으나 지도자와는 동떨어진 야구인생을 살았다.

코치 경험이 전무한 그가 지난해 11월 니혼햄 사령탑에 취임했을 때, 이번 시즌 고전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야구 해설자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지만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머릿속에 그리는 야구와 그라운드에서 구현되는 야구는 차이가 크다.

우승경험이 있는 선수와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감독. 낯선 그림이었다. 오랫동안 침체에 빠졌던 니혼햄은 2006년과 2007년, 2009년 정상에 오르는 등 최근 몇 년 간 소프트뱅크 호크스, 세이부 라이온즈와 함께 리그를 주도했다.


지난 겨울 에이스인 다르빗슈 류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떠났다.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문가들 대다수가 니혼햄의 B클래스(리그 6개 팀 중 4~6위)를 전망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국립대학 출신에 대학교수 경력이 있는 사령탑은 구리야마 감독이 처음이라고 한다. 구리야마 감독은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란듯이 깨트리고 첫 해에 정상에 올랐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싶지 않아 팀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소속팀 전 선수의 성격이나 특징, 전략 등 승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야구노트에 꼼꼼하게 적어두고 응용을 했다고 한다. 프로 6년차 좌완 요시카와 미쓰오를 앞세워 다르빗슈의 공백을 채웠다. 지난 5년 간 6승에 그쳤던 요시카와는 구리야마 감독의 독려 속에 14승(2위), 평균자책점 1.71(1위)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간판 타자 나카타 쇼를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기용했다. 이런 구리야마 감독의 신뢰와 배려의 리더십이 팀을 움직였다.

구리야마 감독은 "경험이 없어 시즌 내내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시즌 개막 직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 명예감독 집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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