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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롯데 타선 통해 본 '야구에서 멘탈이란'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2-10-03 08:40


14일 광주무등야구장에서 KIA와 롯데의 더블헤더 경기가 열렸다. 2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KIA 윤석민이 3회 1사 1,3루에서 롯데 홍성흔에게 3점홈런을 허용했다. 홍성흔이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가운데 고개를 떨구고 있는 윤석민. 광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2.9.14

멘탈(mental). 영어 형용사로 '마음의, 심적인, 정신적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흔히들 야구는 '멘탈의 스포츠'라고 한다. 이미 기술적으로는 완성 단계에 접어든 프로 선수들이 귀신에 씌인 것 처럼 헛방망이를 돌리고, 납득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선수가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2일 군산 KIA-롯데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이 장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KIA 윤석민, 몸쪽공 하나에 울다.

이날 KIA 선발로 나섰던 윤석민의 경기 초반은 완벽했다. 그야말로 '언터처블'. 3회까지 삼진 5개를 잡아내며 한타자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따. 홈플레이트 좌우를 구석구석 찌르는 140㎞ 후반대 직구와 주무기인 고속슬라이더에 최근 바닥을 치고 있는 롯데 타선을 속수무책이었다.

투수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자신감이 넘쳤다. 투구수도 적어 2경기 연속 완봉도 충분히 기대해 볼만 했다. 하지만 4회 실투 하나가 윤석민을 무너뜨렸다. 4회 2아웃까지 잘 잡아낸 윤석민은 3번 조성환을 상대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자신있게 몸쪽 공을 던졌다. 사실 윤석민에겐 '롯데 트라우마'가 있다. 2010년 조성환, 홍성흔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 사구를 내주며 공황장애까지 찾아왔던 윤석민. 이후 롯데 타선, 특히 두 선수를 상대로는 몸쪽 공을 자신있게 던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윤식민이 조성환을 상대로 몸쪽 공을 과감하게 찌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컨디션이 좋았다는 뜻. 좋은 컨디션 속에 언젠가는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것에 대한 도전을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선수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에 나선 윤석민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는 점. 볼도 아닌, 또다시 사구가 나왔다. 물론, 부상으로 연결되지 않은 평범한 사구였다. 조성환도 아무렇지 않게 1루로 걸어나갔고 윤석민도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다. 문제는 사구 이후 윤석민이 급격하게 흔들렸다는 것. 여기에 이어 등장한 타자가 홍성흔이었다. 누가 봐도 쉽사리 몸쪽 공을 다시 던지기 힘든 상황. 포수가 바깥쪽으로 앉았지만 윤석민이 던진 직구는 한가운데로 몰렸고, 홍성흔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공을 받아쳐 1타점 좌중간 2루타로 만들어냈다. 롯데의 26이닝 연속 무득점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자, '언터처블'급 구위를 자랑하던 윤석민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윤석민은 이날 5이닝 4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경기 초반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물방망이' 롯데 타선, 단 한방에 살아나다.

이날 KIA전 전까지 롯데의 14경기 성적은 1승1무12패. 타선의 부진이 뼈아팠다. 이 기간 평균 팀타율이 2할3푼. 득점권 타율이 2할5푼에 그친 것도 뼈아팠다. 특히 이 기간 맞은 4번의 만루찬스를 모두 무산시켰다.

한시즌 내내 팀타율 1위를 과시하며 불방망이 팀 이미지로 대변됐던 롯데다. 그런 롯데 타선이 아무 이유도 없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많은 야구팬들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도 멘탈 문제였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딱 한경기만 이기면, 찬스에서 딱 한방만 터지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인데"라며 아쉬워했다. 치열한 순위싸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몇 차례 찬스가 무산되자 전체 타자들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다 자신의 타석에 찬스가 오면 '내가 못치면 진다'라는 생각이 더해지자 극도의 부담감을 느꼈다. 빠른 볼카운트에 눈에 공이 들어오면 맥없이 방망이가 나가 범타가 되기 일쑤였다. 삼성 투수, 포수가 "공격적 성향의 롯데 타선은 오히여 상대하기 쉽다"고 한 것도 이 맥락이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다 빠지는, 눈에 보이는 유인구면 범타를 유도하기 쉬웠다는 뜻이다. 그렇게 패하는 경기 수가 늘어나자 주변에서 "이러다가 4강에도 못가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2일 KIA전은 선수들의 부담감이 최고조로 달한 경기였다. 경기 초반 윤석민의 구위에 롯데 타자들의 기죽은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하지만 이럴 때 필요했던게 고참의 한방이었다. 14경기 2할3푼5리를 기록하던 홍성흔이 4회 결정적인 선취타점을 만들어냈다. 경기 후 "그냥 생각없이 쳤다"며 밝게 웃은 홍성흔이었지만 전 타석에서 사구를 내준 윤석민과의 심리전에서 승리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어 등장한 강민호의 좌월 2루타가 터지는 등 홍성흔의 적시타 이후 롯데 타선은 마치 짠 것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1승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자 방망이가 힘있게 돌아갔다.

윤석민과 홍성흔의 맞대결을 보면 야구가 왜 멘탈 스포츠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첫 타석. 윤석민은 홍성흔을 상대로 3개 연속 슬라이더를 던졌다. 3구 삼진.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어이없는 공에 홍성흔은 헛스윙하며 아쉬워했다. 그만큼 타석에서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투수가 3구 연속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달라지고 말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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