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맥빠진 국내야구, '몬스터'가 필요하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2-09-19 11:06


20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 2012' 경기가 열렸다. 한국 레전드 선발투수 선동열이 일본 레전드를 상대로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서울=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

2012 프로야구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10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렸다. 6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삼성 이승엽이 넥센 이정훈의 투구를 받아쳐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날리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09.10/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은 까다롭다. 트랜드에 민감하고 최고의 상품에 열광한다. 조금만 유행이 지나거나 신선하지 않으면 눈길을 돌린다.

야구팬들도 큰 차이는 없다. 거의 매일 열리는 야구 경기에서 항상 새로운 걸 찾는다. 이번 시즌엔 해외파 '빅4' 박찬호(한화) 이승엽(삼성) 김병현(넥센) 김태균(한화)의 국내 복귀가 흥행의 최대 요소였다. 예상대로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구름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그랬던 야구장이 요즘 변했다.

허리 통증으로 2군에 가 있는 박찬호와 선발에서 빠져 불펜으로 내려가 있는 김병현은 이번 시즌 기대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승엽과 김태균이 그나마 제몫을 해 박찬호와 김병균의 부족했던 부분을 메워주었다. 빅4로 인한 흥행 몰이는 사실상 끝났다.

18일까지 시즌 총 관중은 658만6655명이다. 목표인 700만 관중 돌파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국내야구는 최고의 인기스포츠라고 안주하는 순간, 팬들로부터 위면당할 수 있다.

'몬스터'가 그립다

이유를 딴데에서 찾으면 안 된다. 무더위, 장마, 그리고 이어진 태풍으로 경기가 자주 취소됐다. 분명 소비자(야구팬)들이 야구장으로 덜 온 이유가 됐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콘텐츠의 질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 점이다.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야구에 굶주렸던 팬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야구장으로 몰려들었다. 돌아온 빅4도 그때까지는 신선했다. 8개팀의 순위 경쟁도 자고 일어나면 뒤바뀔 정도로 혼전양상이었다.

그랬던 팀 순위가 7월초 삼성이 선두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4강 구도가 굳어졌다. 한화는 일찌감치 최하위로 떨어졌다. LG, 넥센도 버티지 못하고 4강 밖으로 밀려났다. 선동열 감독을 영입한 KIA도 힘이 달렸다. 전문가들의 시즌 전 예상이 거의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 '야구, 모른다'는 말이 '야구, 뻔하다'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 팬들은 괴물 수준의 초특급 선수를 보고 싶어 한다. 2006년 프로 데뷔해 그해 야구판을 평정했던 한화 좌완 류현진의 이번 시즌 성적은 8승9패, 평균자책점 2.83에 그쳤다. 류현진에 맞먹는 KIA 선발 윤석민도 8승6패, 평균자책점 3.16에 머물렀다. 가장 뛰어난 평균자책점이 나이트(넥센)의 2.25다. 최다승은 14승(장원삼 탈보토 나이트)이다. 완봉승을 거둔 투수가 5명(유먼 윤석민 노경은 이용찬 나이트) 뿐이다. 최다 세이브도 33세이브(오승환 김사율)로 지난해 오승환의 47세이브에 턱없이 부족하다.


소비자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특급 스타를 보려고 지갑을 연다. 해태 시절의 선동열과 2003년까지의 홈런타자 이승엽 정도의 괴물들이 '킬러' 콘텐츠다. 선동열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공포감을 주었다. 국내 통산 평균자책점 1.20만으로도 그의 위력을 알 수 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5시즌 기록했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도 2003년말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국내 야구의 홈런 역사를 새로 썼다. 99년 54홈런, 2003년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 치면서 야구장에 잠자리채를 등장시켰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고 2006년 류현진이라는 초특급 신인이 등장했다. 엄청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힘이 떨어지면서 괴물이 아닌 '뛰어난 인간'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해외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괴물에 근접했던 류현진 마저 국내무대를 떠날 수도 있다.

된장 냄새나는 베테랑 감독이 보고 싶다

선수 이상으로 감독도 흥행에 중요한 요소다. 사령탑의 일거수일투족은 팬들의 관심사항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8개팀 감독들이 사령탑 경험이 짧은 초보 지도자 일색으로 바뀌었다. 'WBC 영웅' 김인식 감독은 2009년말 한화에서 물러났다.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SK와 갈라섰다. 김응룡 감독은 2004년말 삼성 사령탑에서 물러나 이미 오래전 얘기가 돼 버렸다.

류중일 삼성 감독, 이만수 SK 감독, 양승호 롯데 감독은 올해 2년차 사령탑이다. 두산 김진욱 감독과 LG 김기태 감독은 올해 사령탑 첫 해다. 시즌 도중 김시진 감독과 한대화 감독이 각각 물러난 넥센과 한화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선동열 KIA 감독만 사령탑 8년차다.

초보급 지도자가 무조건 문제라는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경험이 일천한 지도자로 너무 한쪽으로 흘러갔다는 게 문제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선수에도 신구 조화가 있어야 하듯 지도자군에도 300승300패 정도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배 지도자, 선수 그리고 팬들은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야구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토종 감독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제2의 로이스터 또는 그 이상의 외국인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볼거리가 다양해야 질리지 않는다.

팀컬러가 너무 똑같다

사령탑의 스팩트럼이 폭넓지 않을 경우 팀컬러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 8개팀은 마치 짠 것 처럼 외국인 선수를 모두 투수 2명으로 채웠다. 펀치력 좋은 외국인 타자 보다 '지키는 야구'를 위해 마운드 강화에 집중한 결과다.

2000년대 초반 이승엽과 치열한 홈런 경쟁을 벌였던 타이론 우즈(두산), 한화 데이비스, 현대 퀼란 같은 특급 외국인 타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외국인 타자들이 외면당하면서 화끈한 공격야구도 시들해졌다. 이번 시즌 홈런 선두는 넥센 박병호로 28홈런이다.

결국 성적을 내기 위해 모두 '지키는 야구'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감독의 자리가 '파리 목숨'이 돼 버린 상황에서 그런 흐름은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대신 팬들은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왜냐하면 따분하니까.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