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SK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우선 상황을 요약해 보자. 12일 경기 3-0으로 SK가 앞선 상황에서 9회말 선두 이대형 타석 때 박희수가 나왔다. 박희수는 8회말 두타자를 상대해 7개의 공을 이미 던진 상태. 김 감독은 오른손 최동수를 대타로 냈고, 박희수는 최동수를 삼진아웃시켰다. 이어 좌타자 이진영 타석 때 우완 이재영으로 투수가 교체됐다. 이재영은 이진영을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시켰으나 정성훈에게 2루타를 허용했고, 그러자 이 감독은 마무리 정우람으로 교체했다. 그러자 김 감독이 박용택 대신 신인 투수 신동훈을 내세우는 태업성 선수 교체를 하면서 그냥 패배를 지켜봤다.
김기태 감독 "죽어가는 사람에게 장난친다고 생각해보라"
김 감독이 SK로부터 기만당했다고 느낀 부분은 정우람이 아니라 앞서 이재영이 등판한 시점이다. "생각해보라. 박희수 대 이진영, 이재영 대 이진영, (SK 입장에서 봤을 때)어느 매치업이 더 승률이 높을까. 당연히 박희수가 아닌가. 그런데 박희수가 11개 밖에 안던졌는데 이재영을 내더라"고 말한 김 감독은 "거기서 장난을 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희수가 이진영까지 상대를 했거나 정우람이 9회부터 나왔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상대방도 최선을 다해서 이겨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질 때마다 상대방에게 박수를 쳐줬다. 그러나 어제는 그럴 수 없었다"는 김 감독은 "내 새끼가 농락당하는 것이 싫었다. 내 새끼, 내 식구, 내 팬들을 위해 자존심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투수의 대타 등장. "야구는 끝까지 모르는 것이지만 만약 박용택이 (마지막 타자로 나와) 아웃됐다면 상대는 기분좋게 갔을 것이다. 상대 감독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전날 경기장을 찾아 허무한 끝을 봤던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던 내 심정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일만 가지고 그렇게 하진 않은 것 같다"며 그동안 쌓인 것이 있었다는 것을 살짝 내비쳤다.
이 감독과 대화를 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엔 "지금 현재 내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 가서 말씀을 드리거나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가서 '죄송하다'고 말할 거면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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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의 주장을 취재진을 통해 들은 이 감독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반문했다. "만약 LG에서 우리와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이 하지 않았을까. (2사 2루에서) 봉중근을 안내겠어요?"라며 정당한 교체임을 밝혔다.
박희수 대신 이재영을 올린 상황에 대해서는 "김 감독이 우리 사정을 모르지 않나"라고 했다. 박희수를 이재영으로 바꿀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박희수가 전반기엔 2이닝씩 던질 때도 많았다. 무리를 많이 했다. 박희수는 우리 팀에 없어서는 안될 투수다. 중간에 한번 다쳤기 때문에 후반기엔 무리를 안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이 감독은 "어제 11개면 충분했고 오늘도 상황이 되면 던져야 했기 때문에 어제 많이 던졌다면 오늘 경기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고 했다. 정우람이 아닌 이재영이었던 것에는 "정우람이 몸상태가 좋지 않고 지난 주말 등판에서도 좋지 못해 될 수 있으면 쉬게 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2사 2루에서 이재영을 정우람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는 "3점은 한번의 찬스에서 충분히 뽑을 수 있다. 어제 롯데-KIA전을 보면 알 것 아닌가. 2사 1루에서 안타 3개로 3점을 뽑았다"며 "정우람은 세이브 상황이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었고,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이 감독은 "최선을 다했고 당당하게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LG팀에 기만? 내 인생에 그런 것은 없다. 내 스스로가 용납을 못한다. 내가 감독이지만 잘난 사람도 없다. 그냥 직책이 감독이다. 어떻게 남을 깔보겠는가"라며 "난 내것만 생각하지 상대방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기만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사건으로 김 감독과의 관계가 어디까지 악화될까. 이 감독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LG전에 의식하지 않는다. 앞으로 문학에서 두 번, 잠실에서 한 번 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또 내일이다. 난 내 스타일 그대로 간다. 앞으로도 똑같이 할 거다"는 이 감독은 "김 감독과도 껄끄러운 것 없다. 인사오면 받고 나도 인사할 것이다"라고 했다.
두 감독의 입장차는 분명했다. 두 감독의 '기만 논란' 속에서 이날 LG-SK전은 초미의 관심사가 됐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천으로 취소됐다.
잠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