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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감독의 대표팀 전임감독론 타당한 주장인가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12 09:54


8월 3일 부산 롯데-삼성전. 경기가 열리기 전 롯데 양승호 감독(오른쪽)과 삼성 류중일 감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흔히 축구 A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라고 하는데, 야구대표팀 사령탑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최고의 선수를 이끌고 국가를 대표해 최고의 무대에 선다는 자부심과 함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소속팀을 떠나 있어야하는 부담감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감독직은 맡고 싶다고해서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런데 요즘 느닷없이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직을 놓고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WBC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규정에 따라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사령탑이 맡게 돼 있다. KBO가 주도를 해 일방적으로 정한게 아니라 2009년 8개 구단의 사장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결정해 명문화 했다.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사령탑 선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이 규정대로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WBC 대표팀을 지휘하면 된다.

그런데 우승이 유력한 류중일 삼성 감독이 '전임 감독론'을 들고 나왔다. WBC가 열리는 내년 3월은 프로야구 구단들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력을 최종점검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팀을 떠나 있는 게 부담스럽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표팀 감독을 맡아 좋은 성적을 내고도 소속팀이 부진하면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 현역 감독에게 이런 과중한 짐을 주지 말고 현직에서 물러난 지도자에게 대표팀을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류 감독은 다른 팀 감독은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2012 프로야구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9월 10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렸다. 8회말 1사 1,2루 삼성 강봉규의 우익수 뒤쪽에 떨어지는 2루타때 홈을 밟은 2루주자 이승엽이 류중일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그러면서 류 감독이 추천한 게 김인식 KBO 기술-규칙위원장이다. 류 감독의 말 대로 우승팀 감독이 아닌 현직에서 물러난 지도자가 대표팀을 맡으려면 규정을 바꿔야 한다. 전임감독제가 도입되면 축구 A대표팀 감독처럼 경기가 열릴 때마다 자유롭게 관전을 하고, 다른 나라 팀까지 직접 체크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있게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류 감독의 이런 주장은 책임회피로 비쳐질 수 있다. 규정이 명문화되어 있는데 시즌 종료가 임박해 갑자기 전임감독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미 몇차례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김인식 위원장에게 다시 큰 부담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지금까지 대표팀 감독은 현직 감독이 맡아 대부분 좋은 성과를 냈다. 김인식 위원장은 프로팀 감독 신분으로 2006년과 2009년 WBC 대표팀 감독을 맡아 4강과 준우승을 했다. 두산 사령탑 시절인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지휘해 금메달을 수확했다. 김경문 감독 또한 두산 사령탑으로 재임하고 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땄다. 지금까지 현역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고 주요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도자의 경우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하지만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밖에서 지켜보는 것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책임감을 갖고 선수들과 소통하며 싸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아무래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많은 한국시리즈 우승팀에서 대표 선수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을 맡기기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삼성과 두산의 2012 프로야구 경기가 9월 8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렸다. 경기 전 삼성 류중일 감독과 두산 김진욱 감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WBC 때 오사다하루(왕정치) 당시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해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9년에는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다시 정상을 밟았다.

반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대표 때는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현 라쿠텐 이글스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는데,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로 베스트팀을 만들었는데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대표팀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본으로선 충격이었다.

일본도 감독 선임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다. 현직 감독에게 맡기고 싶은데 하라 감독은 고사하고, 아키야마 고지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또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까지 수용불가를 표명하면서,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현역에서 물러난 야마모토 고지 전 히로시마 카프 감독(66)까지 거명되고 있다.

일단 KBO는 원칙을 지키자는 입장이다. WBC 이후 국제대회는 몰라도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규정을 바꾸자는 건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유력한 대표팀 감독 후보인 류중일 감독이 아니라 다른팀 지도자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면 조금 상황이 달랐겠지만.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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