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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잡거나, 아니면 더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죠."
SK에서도 LG에서도, 포수로서 기본적인 캐칭 블로킹 송구 등이 안돼 포수 미트 대신 비슷한 1루수 미트를 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포수로서의 능력은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평가였다. 윤요섭도 자신이 부족한 걸 알았기에 팀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1루수 미트를 낄 때마다 윤요섭은 느꼈다. 야구가 점점 재미 없어진다는 사실을.
사실 1군에 자기 자리가 없는 선수도 태반이다. 윤요섭은 달랐다. 지명타자 혹은 오른손 대타요원으로 확실하게 '포지셔닝'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야구를 하고 싶었다. 포수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김기태 감독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시즌 막바지가 돼서야 윤요섭은 주전포수가 됐다. 사실상 내년을 대비한 포석이다. 보다 수비력이 좋은 김태군이 있음에도 김태군은 경기 막판 투입하는 '세이브 포수'로 활용중이다. 윤요섭은 8일 잠실 KIA전까지 20경기 중 19경기서 주전 마스크를 썼다. 이틀 연속 송구 실책을 저지른 뒤 지난달 26일 잠실 삼성전에서 한 차례 선발 제외됐을 뿐이다.
김 감독은 "원래는 몇 백 게임을 뛰게 해야 풀타임 주전포수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부상은 없는지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사정상 윤요섭은 30경기 정도 밖에 못 본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윤요섭은 '속성'으로 검증을 받고 있다. 육성과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 감독은 좌충우돌하는 윤요섭을 바라보며 "아직은 섣불리 '잘 한다'는 말이 안 나온다"며 웃었다. 지난달 말에는 2경기 연속 같은 실책을 저지르자 "본인도 이유를 알 것"이라며 선발라인업에서 제외시키도 했다. 그래도 윤요섭이 아픈 데 하나 없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대견해하고 있다.
아직 부족한 포수를 주전으로 내보내는 감독의 인내심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풍성한 기회 제공의 결과는 어떨까. 김 감독의 철학은 확고했다.
김 감독은
"기회를 잡거나, 아니면 더 수렁으로 빠져들거나. 둘 중 하나"라며 "주전으로 나가든, 안 나가든 둘 다 기회가 될 것이다. 나가는 선수가 못 하면 그 역시 기회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솔직히 김태군이 가장 섭섭해 할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바로 앞의 일 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기회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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