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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4월, 대한야구협회는 고교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국제야구연맹(IBAF)에서 그해부터 청소년급 이상의 모든 대회에서 나무 배트만을 사용키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8월 열린 봉황대기부터 나무 배트 사용이 강제화됐다. '국제 경쟁력 강화'와 '시대의 흐름'이란 이유로 알루미늄 배트 시대는 막을 내려야만 했다.
알루미늄 배트 사용이 전면금지되자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홈런의 실종이었다. 가볍고, 반발력이 좋은 알루미늄 배트는 방망이 중심에 맞지 않아도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다, 손목 힘만 있다면, 빗맞은 타구도 외야를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나무 배트는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아야 장타로 연결된다. 보다 정확한 배트 컨트롤이 요구되는 건 기본이다.
스카우트들은 당시엔 나무 배트 도입을 반겼다. 프로에서 나무 배트 적응에 실패한 유망주들이 워낙 많았기에 하나의 검증 과정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스몰볼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있어야 수비 시프트를 해도 실수가 나오지 않고, 상대를 흔드는 베이스러닝을 할 수 있다. '기본기=실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12년 고교야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아기자기한 야구가 아닌, '수준 이하'의 야구다. 기본기가 없는데 아무리 좋은 작전이 나와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은 결정적일 때마다 수비실책, 주루 미스, 작전 수행 실패를 범했다. 이정훈 감독 역시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 감독은 "최근 몇 년째 순수신인이 신인왕에 오른 적이 없지 않나. 그만큼 해가 갈수록 고교선수들의 실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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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의 근간은 아마추어다. 프로의 수준이 한순간에 좋아졌다기 보다는, 아마추어 야구가 도태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고교야구의 질적 저하는 서서히, 보이지 않게 진행됐다. 지난 2006년과 2008년에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현장 스카우트들 중 일부는 이를 두고, '2002년 월드컵 효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에서 이룬 4강의 기적에 운동신경이 뛰어난 어린이들이 야구 대신 대거 축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 말부터 '괴물 신인'이 사라진 현실에 비춰보면 타이밍상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야구 붐이 다시 일게 된 계기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세대가 입단할 4~5년 뒤에 좋은 선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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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문제는 많다. 많은 야구인들은 선수들이 '겉멋'부터 들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프로야구가 인기를 누리면서 아직 실력도 되지 않는데 멋있고 화려한 플레이만 흉내낸다는 것이다.
최근 고교야구 대회를 보면, 해도 나지 않는데 모자 위에 고가의 선글라스를 하나씩 올려두고 플레이하는 선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기본기를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멋 내는 법'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현재 고교야구 인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모두의 눈은 프로로 향해 있다. 과거처럼 호쾌한 홈런이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설프게 이기기 위한 야구만을 하는 고교야구 현장을 찾을 리 없다. 학부모들만 텅빈 관중석에서 목 놓아 아들의 이름을 외칠 뿐이다.
도입 2년째를 맞은 주말리그 역시 여러 책임에서 비켜갈 수 없다. 이번 대회 부진으로 선수들이 단기전을 치를 능력과 체력이 부족하다는 게 증명됐다. 일주일에 한 번만 경기를 치르면 되는데 굳이 많은 선수들을 키울 필요가 없어졌다. 주전 라인업에 끼지 못하는 선수들은 출전 기회를 잃었다. 한 쪽에서는 '저변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고교야구 현장에서는 선수단 규모를 축소하기 바쁘다.
엘리트 체육에 교육을 접목시키겠다는 좋은 취지가 있지만, 취지대로 운영되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온 선수들이 갑자기 정규수업을 소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제대로 공부를 시키려 했다면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서서히 바꿔가야 했다. 하지만 협회와 교과부는 제일 눈에 띄는 고등학생들에게 변화를 강요했다. '전시행정'이 선수들을 망친 꼴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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