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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핵심은 생존을 위한 변신이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는 개체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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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재학시절 서재응은 한때 150㎞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던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지난해 작고한 최동원이나 현 KIA 사령탑인 선동열의 계보를 잇는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받았다. 그의 재능은 결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까지 사로잡았다. 1997년 7월 한미야구선수권 대회에서의 호투 덕분에 그해 말 인하대를 중퇴하고 뉴욕 메츠에 전격 입단한다.
하지만 99년 5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이후 서재응은 '150㎞대 강속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부상과 수술에 의한 구속의 저하는 투수들에게는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입힌다. 서재응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결국 이 선택은 맞았다. 서재응은 달라진 팔꿈치 상태를 감안해 투구폼을 간결하게 바꿨고, 체인지업의 구사빈도를 높였다. 그 결과, 메츠 시절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통산 24승을 거둘 수 있었다.
30대 중반의 서재응의 두 번째 변신, 체인지업을 잊다
사실 이 시점에서 서재응의 진정한 모습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재응은 한번 더 변신에 나섰다. 그것도 선수로서는 서서히 저물고 있는 30대 중반의 나이에서의 두 번째 변신이다. 보통 독해서는 쉽게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변신인데, 서재응은 두 번이나 스스로를 바꿨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2008년 한국 무대로 컴백한 서재응은 이름값에 비해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컨트롤과 체인지업이 메이저리그 시절만큼 나오지 않았고, 팔꿈치 상태도 좋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2008년 이후 지난 4년간 단 한 차례도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2010년 9승7패, 평균자책점 3.34가 최고 성적이었다.
게다가 주무기였던 체인지업도 시간이 갈수록 국내 타자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절대로 10승 고지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서재응을 엄습했다. 결국 서재응은 지난해 후반부터 축족인 오른다리를 살짝 굽혀 하체의 힘을 더 실을 수 있는 투구폼으로 수정했다. 이어 효용성이 떨어진 체인지업 대신 투심과 포크볼, 슬라이더 등 남몰래 연습해온 신구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해 말과 올해 스프링캠프를 통해서는 무려 10㎏을 감량하기도 했다. 대단한 도전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목표 '10승', 도전이 아름답다
서재응은 6일 광주 SK전에서 7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7승(7패)째를 따냈다. 평균자책점도 3.15밖에 안된다. 한국 무대 복귀 후 가장 좋은 페이스라고 볼 수 있다.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의 노력이 빚은 결실이다. 그간의 남모를 고통은 이 기록 뒤에 숨어있다.
서재응은 "10승은 내 야구인생의 목표"라고 말하면서 "올해야말로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현재 남은 일정으로 보면 서재응은 최대 5차례 정도 더 나올 수 있을 전망이다. 이 중 3승 이상을 거두면 된다. 현재의 페이스나 몸상태라면 가능할 듯도 하지만, 야구는 투수 혼자 잘 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서재응은 동료들의 선전을 언제나 믿고 있다. 서재응은 "내 승리 뿐만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진출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야수들도 알아서 잘 할 것"이라며 자신 뿐만 아니라 팀의 선전에 대한 확신을 내보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변신의 귀재' 서재응의 도전은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10승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