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빅리그만 바라보는 류현진, 내년이 걱정된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9-03 18:18


31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한화 선발투수 류현진이 KIA 타자들을 상대로 힘차게 볼을 던지고 있다.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31.

'괴물'은 과연 '꿈의 좌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준비까지 갖췄을까.

한화 에이스 류현진(25)은 이미 수 년 전부터 "기회가 되면 해외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그리고 결국 그 시기가 다가왔다. 올 시즌이 끝나면 프로 7시즌을 채워 구단 허락하에 포스팅시스템으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벌써부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 (구단이) 보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되고 있다. 모두가 류현진의 이같은 희망을 예쁘게 포장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냉정히 '현실'을 돌아보자.

포스팅시스템의 실패 가능성과 그 이후 류현진에게 찾아올 상실감에 대한 우려를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물론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부터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류현진의 미국 진출이란 실패 확률이 절대적으로 큰 시도다. 따라서 무책임한 '장밋빛 전망'보다는 실패 그 이후에 대한 대비가 우선돼야 한다.


31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화 선발 류현진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8.31.
한국선수들에게 포스팅시스템은 바늘구멍 통과

류현진은 분명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에이스임에는 틀림없다. 데뷔 첫 해 신인왕과 MVP, 다승왕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지난해까지 6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하며 한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우뚝 섰다. 때문에 한국에 파견된 해외 구단의 스카우트들도 류현진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포스팅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관심'이 곧 '영입'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리그에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적정 몸값과 영입을 통한 기대효과 등을 심사숙고하게 마련이다. 특히나 한국보다 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메이저리그 구단은 이런 원칙에 더욱 철저하다. 쉽게 말해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포스팅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제도는 한국 선수들에게는 더욱 불리하다. 아무리 한국에서 '날고 기는' 류현진이라고 해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시각에서는 생소하고, 검증받지 않은 선수일 뿐이다. 메이저리그의 시각 자체가 한국리그를 '마이너리그 수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쓰자카(이적료 5111만 달러)나 다르빗슈(이적료 5170만 달러)가 엄청난 이적료를 받은 것도 그들이 류현진에 비해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서가 아니다. 포스팅 금액 산정의 기준은 개인의 실력 못지않게 리그의 평판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류현진의 명성과 존재감은 한국을 벗어나는 순간 상상 이상의 실망감으로 둔갑할 수 있다.

포스팅시스템 잔혹사, 류현진이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모두 포스팅시스템에서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 이상훈(LG)이나 진필중(두산) 임창용(삼성) 등 당대 최고의 투수들이 포스팅에 나섰다가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한때 '20승'을 달성했던 이상훈은 98년 포스팅에서 이적료 60만 달러를 제시받았다. 또 당대 최고의 마무리 진필중(당시 두산)이 2002년 초 아무런 입찰도 받지 못했다가 그해 말 두 번째 도전에서 고작 2만5000달러 제시라는 어처구니없는 굴욕을 경험했다. 그리고 2002년 17승을 올린 임창용의 포스팅 응찰액은 역대 한국인 선수 최고액인 65만 달러였다. 당연히 당시 소속팀이던 삼성은 그 가격엔 줄 수 없다며 협상을 포기했다.

류현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당대의 이상훈이나 진필중 임창용 등이 현재의 류현진에 비해 명성이나 실력에서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 한국리그의 수준에 대한 평가가 다소 후해진 점을 감안해도 류현진의 포스팅 응찰액은 많아야 앞선 선배들의 2~3배 수준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대략 100만~200만 달러라는 뜻인데, 류현진이 팀 전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화에서 고작 10억~20억원 벌자고 보내준다는 건 비지니스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류현진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개인의 꿈을 후원하는 구단은 없다. 과거 운영난을 겪던 해태나 현대는 각각 선동열과 이종범, 정민태 등을 일본에 보내며 상당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 하지만 한화는 상황이 다르다. 구단의 자금사정이 어렵지도 않고, 류현진의 포스팅을 통해 얻을 이익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보내지 않는게 구단의 입장에서는 '정답'이다.

류현진, 실패 후를 생각했을까?

그런데 류현진은 일종의 '조급증'에 빠진 느낌이다. 이로 인해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할 경우 류현진이 경험하게 될 '후폭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리한 류현진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올해 성적이 좋지 않아 메이저리그 구단에 크게 어필하지 못했고, 또 지금까지 포스팅에 나선 선배들의 사례를 따져봤을 때도 그리 후한 액수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미국행은 결국 구단이 보내줘야 이뤄진다는 점을 이미 파악했다. 그래서 "돈보다는 도전이 중요하다"라든가 "(구단이) 가능하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올 시즌 종료 후 포스팅에 의한 해외진출 자격을 함께 얻게 되는 삼성 오승환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오승환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해외 진출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라며 명확히 선을 그어버렸다. 그에 비하면 류현진은 그만큼 조급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렇듯 자신의 속내를 미리 드러내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기법이다. 무엇보다 "반드시 미국으로 가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마음이 팀을 떠났음을 보여주는 것은 미국행이 좌절됐을 경우 상당한 데미지로 돌아올 수 있다. 자칫 한국프로야구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식으로 비쳐질 경우 그 뒷처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류현진 스스로도 이렇듯 기대감을 키우다 실패했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받을 수 있다.

류현진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성공 보다 훨씬 확률이 높은 좌절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고려해서 말하고 움직여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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