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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윤은 LG 팬들에겐 '애증'의 존재와도 같다.
정의윤에 대한 팬들의 애증, 오승환-윤석민-정근우 놓쳐서?
LG 팬들이 애증을 가졌던 건 당시 타팀 1라운드 지명 선수들이 정의윤 이상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드래프트는 연고지 1차 지명을 제외하고도 유독 좋은 자원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당시 LG는 전통적인 좌타자 편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우타 거포 유망주가 필요했다. LG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의윤은 일찌감치 상무에 입대해 군 문제를 해결했다. 전역 후 첫 시즌인 지난해, 정의윤은 부푼 마음을 안고 시즌에 들어갔다. 93경기에 출전하면서 데뷔 시즌 이래 두번째로 많은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타율 2할5푼6리에 23타점. 무엇보다 홈런이 하나도 없었다.
'무홈런' 스트레스는 정의윤에겐 큰 짐이었다. 팬들의 기대치가 컸기에 비난도 거셌다. 함께 우타 유망주로 머물던 박병호마저 넥센으로 이적해 모든 기대는 그에게 쏠렸다.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이상하게 말려들어갔다. 홈런 스트레스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정의윤은 지난해 10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빨리 털어내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술과 재활로 오키나와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했고, 4월 말 뒤늦게 1군에 합류했다.
팀이 한창 잘 나가던 때, 고정된 그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정의윤은 김무관 타격코치의 집중 지도를 받으며 유망주 딱지를 벗어 던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거포가 아닌, '중장거리 타자'로 자신의 방향성을 잡았다. 드넓은 잠실구장에서 30홈런을 때려내는 건 쉽지 않은 일. 일단 중장거리포로 타격 정확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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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홈런에 대한 스트레스는 정의윤의 장점마저 갉아 먹고 있었다. 정의윤은 고교 시절부터 맞히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장타를 의식하는 스윙을 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돼버렸다. 조급한 마음에 나쁜 공에 몸이 자꾸 따라 나갔고, 결국 상대 투수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에 상체 위주의 스윙을 하고 있었다. 상체 위주의 배팅은 임팩트 순간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해 '얻어 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장타를 생산해내기 힘들다.
정의윤은 의자에 앉아 토스 배팅을 소화하는 등 다양한 훈련을 했다. 나쁜 습관이 들대로 들어버린 정의윤에 대한 김 코치의 독특한 '처방전'이었다. 상체 힘을 빼고, 공을 받아놓고 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김 코치는 LG에 온 뒤부터 정의윤을 키워보고 싶다고 했던 터. 지도에 열을 올렸다.
훈련을 하면서 단점은 조금씩 지워나가고 장점은 극대화시켰다. 맞히는 능력이 좋으니, 유인구나 나쁜 공에 손이 나가도 배트 컨트롤로 타구를 외야로 보내게 만들었다. 팀 선배 이병규처럼 '배드 볼 히팅'도 제법 잘 하는 편이다.
동시에 타구 분포도 좋아졌다. 지난해까진 임팩트가 늦게 이뤄지거나 맞히는 데 급급해 우측으로 많은 타구가 갔다면, 이젠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공을 받아놓고 힘껏 당겨치기도 하고, 결대로 밀어치기도 한다.
정의윤은 "작년엔 홈런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올해는 아예 홈런 생각을 버렸다.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홈런도 나오더라"고 말한다. 올시즌 홈런은 2개. 많은 수치는 아니지만, 묵은 체증을 싹 날린 홈런 덕분에 정의윤은 김 코치의 지도대로 좋은 타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타격 밸런스와 타이밍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1일 현재 정의윤은 63경기서 타율 3할2리 2홈런 24타점을 기록중이다. 데뷔 후 아직까지 3할을 기록한 적은 없다. 물론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정의윤에게 3할의 의미는 깊다.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비상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과도 같다. 그 역시 3할에 대한 욕심이 크다. "홈런도 좋지만, 타율이 높을 수록 상대한테 까다롭다는 말이잖아요."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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