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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배영수하면 '베테랑', '노장'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81년생인 그는 아직 만으로 31세다. 너무나 일찍 나이에 두각을 드러낸 탓에 그런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아직도 '왕년의', 또는 '원조' 에이스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4년에는 17승을 올리며 그 해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선 총 116개의 공을 던지며 연장 10회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치기도 했다. 0대0으로 경기가 끝나 노히트노런이 인정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어쨌든 혼신을 다한 그의 투구는 야구팬들에게 아직까지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150㎞에 이르는 강속구를 펑펑 뿌릴 수 있었다. 하지만 투수의 팔은 영원하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린 뒤 2006년 8승(9패)으로 부진했다. 팔꿈치가 탈이 난 것이다.
보다 천천히 몸을 만들었다면, 구속이 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빨리 공을 던지고 싶었다. 돌이키기엔 이미 늦은 상태. 배영수는 피나는 노력으로 변화구 레퍼토리를 늘렸다. 예전이라면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승부가 됐겠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슬라이더의 각은 살아났고, 이젠 포크볼과 체인지업, 투심패스트볼까지 자유자재로 던지게 됐다. 2009년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긴 뒤 2010년과 2011년 6승을 거두며 조금씩 승리에 대한 감을 찾기 시작했다.
올시즌엔 구속도 140㎞대 중반까지 올라왔다. 직구 구속이 올라오니 그동안 갈고 닦은 변화구의 위력이 좋아졌다. 류중일 감독은 올시즌 배영수가 재기할 수 있었던 데 대해 묻자 "변화구가 아무리 좋아도 직구에 위력이 없으면 안 치면 그만이다. 하지만 스피드와 볼끝이 있다면, 변화구 역시 그 효과가 커진다. 140㎞대 중반의 공을 던지는 게 가장 큰 힘이다"라고 답했다.
배영수는 1회말 첫 타자 오지환을 5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역대 23번째로 1000탈삼진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바깥쪽 꽉 찬 133㎞짜리 슬라이더. 전성기 그의 강속구를 빛나게 해줬던 그 슬라이더였다.
비록 전성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배영수의 100승은 빛났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기에 그렇다. 시즌 10승, 통산 100승, 1000탈삼진. 배영수의 야구 인생 2막은 이제 시작이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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