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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라고 부르기엔 '2%' 부족하다. 외국인선수가 에이스를 맡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주키치가 '이젠 옵션 채웠어' 스타일?
이쯤 되면 슬슬 '최초 옵션을 달성한 뒤 의욕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흔히 외국인 투수들, 특히 선발투수에게 있어 기본 옵션은 '10승'이다. 보통의 1,2선발들, 강팀이라면 1,2,3선발급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껏 '용병'이란 말을 외국인선수에게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틀에서 규정을 지켜가며 FA(자유계약선수)가 되기 전까지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한 팀에서만 뛰는 선수들과 그들은 분명 다르다. 소속감? 그들은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국내서 많은 사랑을 받고 맹활약을 펼치다가도 더 큰 액수를 부르는 일본 프로야구로 넘어가는 경우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인선수들의 시선도 변화하고 있다. 성적에 따라 급격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웬만해선 외국인선수들에게 호의적이다. 동료 선수들은 따뜻하게 외국인선수들을 맞아주고, 구단도 물심 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에서 실패한 외국인선수들이 한국에서 다시 성공했을 때, 입을 모아 "절대 일본은 안 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조금씩 소속감을 갖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무대 2년차인 주키치 역시 그렇다. 리즈와 함께 2년간 LG에서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대접받는' 인생을 살고 있다. 생소한 주키치의 투구 스타일이 국내 프로야구에 정확히 들어맞았고, 이젠 가족과 함께 안정적인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주키치는 평소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다. 마운드에서 쉽게 흥분하고, 거친 언변을 내뱉는 모습과 정반대다. 팀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고, 음식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본인 역시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다시 메이저리그에 가는 게 아니라면, LG에서 계속 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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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한 주키치를 위한 변명 거리는 있다. 주키치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불펜 외도 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엔 7월5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등판해 8이닝을 던진 뒤 이틀 뒤엔 세이브를 올렸다.
한시적인 불펜 외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최근 프로야구에서도 선발투수의 3연전 중 2경기 등판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았던 주키치의 기세는 이때부터 꺾였다. 이후 5승을 추가하며 데뷔 첫 해 10승을 달성하긴 했지만, 전반기만한 위력적인 모습은 없었다.
올해에도 불펜 외도는 있었다. 지난달 17일 인천 SK전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지난해보단 상황이 좋았다. 4일 전인 13일 잠실 넥센전에서 2⅔이닝 동안 48개의 공을 던졌을 뿐이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19일 잠실 SK전에 선발등판시킨 뒤엔 주키치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후반기 선발로테이션에서 맨 뒤로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의 전철을 밟지 안힉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키치는 부진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10승을 일찌감치 달성한 뒤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에도 9월20일 잠실 넥센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10승을 달성한 뒤 2연패로 부진한 뒤 시즌을 마감했다. '흔히 나오는 외국인선수의 태업'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이너리그에서 투구 이닝이 많지 않았던 주키치가 비시즌 훈련에 충실하지 못해서 온 후유증으로 보는 게 맞다.
주키치는 LG의 에이스다. 시즌 전 경기조작으로 선발투수 2명을 잃고, 봉중근이 마무리로 보직을 옮기면서 에이스 역할을 해줄 투수가 사라졌다. 공 자체만으로 보면, 주키치는 에이스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에이스는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연패를 끊고, 팀 사정에 따라 보직 이동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가혹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팀을 대표하는 투수의 숙명이다. 외국인보다 토종 에이스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외국인선수들이 에이스를 맡는 팀의 경우엔 주로 베테랑들이 많다. 피부색은 다를 지라도, 오랜 경험으로 인해 팀이 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주키치는 올해로 서른이다. 마이너리그 유망주에서 국내에 온 뒤 정상급 선발투수로 발돋움한 케이스다. 내년에도 주키치는 마운드의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한다. 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번 겨울, 주키치가 비시즌 훈련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현실 안주'에 그치거나, 최정상급 투수로 '발전'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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