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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기 무승' 주키치, 2% 부족한 LG의 에이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8-26 13:51



에이스라고 부르기엔 '2%' 부족하다. 외국인선수가 에이스를 맡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LG의 외국인선수 주키치가 또다시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지난 25일 잠실 삼성전에서 6이닝 5실점(4자책)으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다승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 탈보트가 5⅓이닝 5실점(4자책)으로 무너지면서 승리 기회가 왔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후반기 첫 등판이었던 지난달 27일 인천 SK전에서 시즌 10승을 달성한 뒤 5경기 째 승리가 없다. 8월 들어 5경기에 나서 2패 평균자책점 6.59라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중이다.

주키치가 '이젠 옵션 채웠어' 스타일?

이쯤 되면 슬슬 '최초 옵션을 달성한 뒤 의욕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흔히 외국인 투수들, 특히 선발투수에게 있어 기본 옵션은 '10승'이다. 보통의 1,2선발들, 강팀이라면 1,2,3선발급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다.

흔히 선수와 구단이 맺는 '진짜' 계약서에는 다양한 옵션이 기재돼 있다. 개인과 팀의 특성에 따라 승수는 물론, 투구이닝, 평균자책점 등에 상세한 옵션이 걸려있게 마련이다.

지금껏 '용병'이란 말을 외국인선수에게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틀에서 규정을 지켜가며 FA(자유계약선수)가 되기 전까지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한 팀에서만 뛰는 선수들과 그들은 분명 다르다. 소속감? 그들은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국내서 많은 사랑을 받고 맹활약을 펼치다가도 더 큰 액수를 부르는 일본 프로야구로 넘어가는 경우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인선수들의 시선도 변화하고 있다. 성적에 따라 급격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웬만해선 외국인선수들에게 호의적이다. 동료 선수들은 따뜻하게 외국인선수들을 맞아주고, 구단도 물심 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에서 실패한 외국인선수들이 한국에서 다시 성공했을 때, 입을 모아 "절대 일본은 안 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조금씩 소속감을 갖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무대 2년차인 주키치 역시 그렇다. 리즈와 함께 2년간 LG에서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대접받는' 인생을 살고 있다. 생소한 주키치의 투구 스타일이 국내 프로야구에 정확히 들어맞았고, 이젠 가족과 함께 안정적인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주키치는 평소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다. 마운드에서 쉽게 흥분하고, 거친 언변을 내뱉는 모습과 정반대다. 팀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고, 음식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본인 역시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다시 메이저리그에 가는 게 아니라면, LG에서 계속 뛰고 싶어 한다.


올시즌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LG와 두산이 10일 잠실에서 만났다. LG 선발로 나서 8승째를 올리며 수훈 선수로 뽑힌 주키치가 손가락 응원도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는 올시즌 7승1패로 두산에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다.
잠실=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2.06.10/
주키치를 위한 변명, 그래도 에이스는 에이스 다워야

부진한 주키치를 위한 변명 거리는 있다. 주키치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불펜 외도 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엔 7월5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등판해 8이닝을 던진 뒤 이틀 뒤엔 세이브를 올렸다.

한시적인 불펜 외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최근 프로야구에서도 선발투수의 3연전 중 2경기 등판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았던 주키치의 기세는 이때부터 꺾였다. 이후 5승을 추가하며 데뷔 첫 해 10승을 달성하긴 했지만, 전반기만한 위력적인 모습은 없었다.

올해에도 불펜 외도는 있었다. 지난달 17일 인천 SK전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지난해보단 상황이 좋았다. 4일 전인 13일 잠실 넥센전에서 2⅔이닝 동안 48개의 공을 던졌을 뿐이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19일 잠실 SK전에 선발등판시킨 뒤엔 주키치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후반기 선발로테이션에서 맨 뒤로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의 전철을 밟지 안힉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키치는 부진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10승을 일찌감치 달성한 뒤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에도 9월20일 잠실 넥센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10승을 달성한 뒤 2연패로 부진한 뒤 시즌을 마감했다. '흔히 나오는 외국인선수의 태업'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마이너리그에서 투구 이닝이 많지 않았던 주키치가 비시즌 훈련에 충실하지 못해서 온 후유증으로 보는 게 맞다.

주키치는 LG의 에이스다. 시즌 전 경기조작으로 선발투수 2명을 잃고, 봉중근이 마무리로 보직을 옮기면서 에이스 역할을 해줄 투수가 사라졌다. 공 자체만으로 보면, 주키치는 에이스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에이스는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연패를 끊고, 팀 사정에 따라 보직 이동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가혹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팀을 대표하는 투수의 숙명이다. 외국인보다 토종 에이스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외국인선수들이 에이스를 맡는 팀의 경우엔 주로 베테랑들이 많다. 피부색은 다를 지라도, 오랜 경험으로 인해 팀이 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주키치는 올해로 서른이다. 마이너리그 유망주에서 국내에 온 뒤 정상급 선발투수로 발돋움한 케이스다. 내년에도 주키치는 마운드의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한다. 보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번 겨울, 주키치가 비시즌 훈련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현실 안주'에 그치거나, 최정상급 투수로 '발전'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20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2012 프로야구 SK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4회초 LG 선발투수 주키치가 SK 이호준의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낸 좌익수 양영동의 엉덩이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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