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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LG전 시즌 5승째를 거둔 이후 3경기 연속 무승(2패)이다. 박찬호에게는 올시즌 두 번째로 긴 침묵이다.
박찬호는 시즌 데뷔전인 4월 12일 두산전에서의 첫승 이후 5경기 동안 2패에 머물다가 35일 만에 승리를 챙긴 바 있다.
시즌 초반 침묵기에는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2차례 있었고, 타선과 불펜진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경우가 주 요인이었다.
하지만 최근 침묵기에서는 올시즌 최다 실점이 1차례 있었고, 나머지 2경기는 퀄리티스타트없이 스스로 승리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박찬호가 선발에서 약간 버겁다 싶으면 팬들 사이에서 단골메뉴로 올랐던 '시나리오'가 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찬호를 불펜으로 전환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선발로 나서 길게 던지다가 고전하는 것보다 짧고 굵게 임팩트있게 던지면 1∼2이닝 정도는 거뜬하게 막을 것같다는 기대감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박찬호는 올시즌 등판 이후 초반 집중력이 좋았다. 그동안 출전한 20경기의 투구기록 가운에 1∼3회, 4∼6회 이닝별 분석을 살펴보자.
박찬호는 초반 1∼3회를 막는 동안 피안타율, 피출루율, 피장타율 등 항목에서 4∼6회보다 크게 좋았다. 피안타율의 경우 1∼3회에 2할2푼4리에 그친 반면 4∼6회에는 3할2푼1리에 달했다.
피출루율과 피장타율 역시 각각 3할1푼6리(1∼3회)→3할9푼2리(4∼6회), 3할2푼2리(1∼3회)→4할1푼8리(4∼6회)의 기복을 보였다.
7회 이후로 넘어가면 피안타율 5할8푼3리, 피출루율 6할4푼7리에 달하니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같은 표면적인 기록만 놓고 보면 불펜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가면 박찬호의 불펜 전환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라는 게 한화 구단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박찬호가 불펜으로의 전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화가 박찬호의 불펜 전환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대화 감독은 지난 6월쯤 투수코치를 시켜 박찬호가 불펜 전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떠본 적이 있다. 당시 한화는 마무리 바티스타는 물론 중간계투 박정진 송신영 등 필승조가 부진을 겪고 있을 때였다.
박찬호가 최고참이기 때문에 예우를 해야 하는데다, 투수에게 보직 전환은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미리 의중을 타진한 것이다. 이때 박찬호의 대답은 "(불펜전환은)힘들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 감독은 박찬호의 이같은 반응을 이해했다. 한 감독은 "불펜투수는 매경기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출동준비를 해놓고 항상 대기를 해야 한다"면서 "박찬호처럼 적지 않은 나이에 매일 대기하도록 하는 것은 체력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최고의 투수 출신 KIA 선동열 감독도 한 감독의 이같은 입장을 지지했다. 선 감독은 현역시절 에이스와 마무리 경험을 모두 거쳐봤기 때문에 불펜투수들의 고충을 더 잘안다.
"마무리나 불펜투수가 던지는 투구수가 적어 덜 피로할 것 같지만 겪어보면 부담감과 그 고충은 말도 못할 정도다. 선발은 5일 휴식이 있지만 불펜은 매일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어렵다"는 게 선 감독의 설명이다.
선 감독은 "심리적인 고충과 체력적인 피로도로 따지자면 중간투수들이 선발투수보다 연봉을 더 받아야 하는 게 맞다"고 말할 정도다.
넥센 김시진 감독도 "선발은 초반에 1∼2점 실점하더라도 길게 던지기 때문에 나중에 더이상 실점하지 않고 막으면 된다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불펜투수는 볼넷 1개라도 내주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들 전문가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박찬호가 불혹의 나이에도 투구수 90개 이상으로 선발진을 잘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불펜으로 전환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찬호는 한화에 입단한 이후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발투수로 준비를 해왔고, 시즌 들어서도 선발진을 지켜왔다. 신체 밸런스와 피칭 리듬이 선발체질로 굳혀진 상태다.
여기서 보직을 변경하게 된다면 박찬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자 올시즌을 지내기 위해 유지해온 '틀'이 뒤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화 구단으로서는 위험천만한 '도박'인 셈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