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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두산은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라이벌이다. 그렇다면 LG와 넥센은? 그건 라이벌이 아니라 '앙숙'이라 부른다. 라이벌과는 또다른 개념인 '앙숙'이란 수차례 누적된 구원과 악연으로 인해 자연스레 생성된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뉘앙스다.
시작은 현대 시절부터?
지난해 넥센의 베테랑 송지만은 LG와의 악연에 대해 "예전엔 조금 그런게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고 했다. 송지만이 말한 과거의 일, 그건 현대 왕조가 몰락하던 2006년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대호가 침몰하던 2007년에는 LG에게 7승1무10패로 성적마저 밀렸다. 그러나 히어로즈로 재창단된 뒤 설욕이 시작됐다. 팀은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LG를 상대로는 언제나 강했다. 2008년(11승7패)과 2009년(11승8패)엔 상대전적도 앞섰다. 2년간 히어로즈가 LG 외에 상대전적에서 앞선 경우는 한 차례(2009년 두산 11승8패)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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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난해였다. 최하위로 떨어진 넥센은 LG만은 철저하게 잡아냈다. 객관적인 전력은 누가 봐도 LG의 우세였지만, 넥센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19경기 중 9차례가 1점차 이내 승부였고, 5번이나 연장전을 치렀다. 넥센은 1점차 승부에서 6승3패, 연장전서 4승1패로 압도했다.
작년 두 팀의 구도는 첫 경기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 이맘때였다. 4월29일 잠실에서 두 팀은 첫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LG는 초반부터 터진 타선에 힘입어 8-3으로 앞서있었다. 하지만 9회초 귀신에 홀린듯 연신 점수를 내줬다. 8대7로 승리하긴 했지만, 찜찜했다. 소위 '말렸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넥센 선수들은 '별 거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야구는 멘탈스포츠다. 이후 LG는 마치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된 투수 마냥 '넥센 증후군'에 시달렸다. 리드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연장전 허용-접전 끝 패배의 패턴이 이어졌다. 시즌이 계속될수록 넥센 선수들은 입을 모아 "LG엔 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뒤져 있어도 금방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울 수 없는 그 이름, 이택근 송신영 김성현
시즌이 끝난 뒤에도 악연은 계속됐다. 먼저 이택근이 LG에서 친정팀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4년간 총액 50억원이라는 초대형 FA(자유계약선수)계약이었다.
이택근이 누구인가. 히어로즈의 서울 입성금을 두고, LG와 두산과 줄다리기를 하던 끝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LG로 현금 트레이드시킨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이런 이택근에게 거액을 안기며 다시 품에 안는 모습은 '우리가 이 정도다'라고 LG를 비롯한 나머지 구단에 무언의 시위를 한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두 팀은 지난해 트레이드 마감일에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LG는 마무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즌 뒤 FA로 풀리는 송신영(현 한화)을 데려왔다. 결국 송신영은 미련없이 LG를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넥센으로 간 박병호와 심수창은 새로이 기회를 잡았기에 축하해주면 됐다. 실질적인 트레이드의 중심이었던 영건 김성현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기조작이라는 변수가 터졌다. 결국 LG는 박병호와 심수창을 아무런 대가없이 보낸 셈이 되버렸다. 팬들은 분노했다. LG도 이를 악물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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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은 넥센 상대 징크스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엔 지난해처럼 밀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감독부터 중심을 잡아야 했다. 일부러 선수들에게 넥센에 대한 주문을 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이런 그도 실제 경기에서는 절박한 모습을 보였다. 0-3으로 뒤진 5회초 무사 2루서 나온 유강남의 스리번트가 이를 대변한다. '실패=아웃'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할 만큼, 이 찬스를 놓치면 경기 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흐름을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결국 작전이 적중하며 첫 득점을 올린 뒤 이대형과 이병규(배번7)의 연속안타로 3-2까지 쫓았다. 타선의 응집력을 끌어낸 기막힌 스리번트였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LG를 외면했다. LG는 연장 12회초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과거 '모래알'이라 불리던 시절을 연상케 했다. 외야수들은 잇따라 만세를 불렀고, 내야에선 평범한 땅볼을 놓치고 견제구가 뒤로 빠져나갔다.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감춰져 있던 과거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사실 9회말 승부가 결정됐다면, 올시즌 LG는 편안하게 넥센을 상대할 수도 있었다. 2사 만루에서 LG 이진영의 안타성 타구를 넥센 좌익수 장기영이 넘어지며 잡아내면서 첫경기부터 '말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됐다. LG로서는 24일을 빨리 기억속에서 지워내야 한다. 자칫 이날 패배를 마음에 두고 있다간, 시즌 내내 넥센에게 시달린 지난해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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