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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과 '3번째 구질', 투수와 손감각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2-04-25 10:31 | 최종수정 2012-04-25 10:31


삼성 오승환의 손이다. 최고의 포심패스트볼을 뿌리는 그의 손은 그러나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처럼 떨어지는 구질을 던지는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스포츠조선 DB

오승환에게 '3번째 구질'이 있었다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오승환이 포크볼 혹은 체인지업을 잘 던졌다면 한국프로야구 역사는 또다른 방향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삼성 오승환이 24일 롯데전에서 겨우 ⅔이닝 동안 6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무려 32개를 던졌다. 블론세이브와 한동안 담쌓고 살았던 오승환이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만약 오승환이 32개를 던지는 동안 좋은 커브 혹은 포크볼을 두세개쯤 섞을 수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롯데 타자들의 머리 속에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외에 제3의 구질이 떠돌아다녔다면, 이날과 같은 공격적인 스윙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발 직구만 던져주세요

지난해 시즌 중반 대구에서 열린 경기였다. 훈련때 오승환의 학교 후배인 A가 잠시 선배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 선수는 오승환에게 "제발 저에겐 직구만 던져주세요"라며 '애교'를 떨었다.

오승환의 시속 150㎞짜리 포심패스트볼은 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고 레벨이다. 알면서도 못 친다는 공이다. 그런데 왜 A는 직구를 달라고 했을까. A는 "직구를 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승환이형 하면 강력한 직구가 떠오르는데, 직구를 기다리는데 처음부터 슬라이더가 들어오면 당황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타자들은 오승환을 상대할 때 단순명쾌한 결론을 갖고 타석에 선다. 직구 아니면 슬라이더다. 슬라이더를 기다리다가 직구를 공략한다는 건, 오승환의 구위를 감안할 때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타자들은 대부분 직구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투-피치, 오승환의 과제


이처럼 해법이 단순한데도 타자들이 잘 못치는 건, 오승환의 포심패스트볼이 그만큼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는 지난해 9월 인터뷰때 "오승환이 일본에서 던지는 걸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오승환의 포심패스트볼은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타자들의 이같은 반응은, 한편으로는 오승환이 전형적인 '투-피치 피처'라는 걸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제외하면 제3의 구질, 혹은 '두번째 변화구'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승환은 투심패스트볼이나 원심패스트볼을 연습하기도 하지만, 실전에선 여전히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다.

오승환이 손가락이 길지 않아서 포크볼을 던지기 어렵다는 얘기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 한편으론 투구폼의 특성상 좋은 커브를 던지는 것도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마무리투수에게 최고의 친구는 강력한 포심패스트볼이다. 마무리투수가 구질이 다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없다는 건, 일단 수세에 몰릴 경우 결정구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2,3년 전 오승환이 부상과 부진에 시달릴 때 그랬다.

김수경과 커브, 투수와 손 감각

이쯤에서 떠오르는 단순한 의문. 프로야구 투수들은 허구헌날 공을 던진다. 그렇게 많이 던지면서 새로운 변화구 하나쯤 장착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넥센 김시진 감독은 "투수의 손 감각은 저마다 다르다. 타고난 투수가 있는 반면, 힘든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던 김수경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김 감독은 "수경이가 얼마나 좋은 슬라이더를 던졌는가. 그런 수경이가 커브를 던지려고 하면 공이 산으로 간다. 손 감각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향성이 다른 여러 종류의 구질을 모두 던지는 투수로는 KIA 윤석민 서재응 등이 꼽힌다. 서재응의 경우 선발 등판을 마친 뒤 투구기록표를 살펴보면 모두 6~7개의 구질을 던진 것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손가락 감각이 좋은 케이스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고 해서 그 모든 구질이 주무기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대신 불펜에서 공을 던져보면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 컷패스트볼, 싱커 등 던질 수 있는 변화구를 시험한 뒤 그날 유독 잘 제구되는 구질을 택할 수 있다. 구질 다양성의 힘은 여기에 있다.

신은 공평하다. 오승환에게 최고의 포심패스트볼을 선물했지만, 서재응의 손끝 감각까지 주진 않았다. 오승환을 상대로 6점을 뽑은 24일, 롯데 타자들은 곗돈 탄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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