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야구장 외야펜스 총체적 안전불감증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4-16 14:20


15일 인천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가 열렸다. 6회말 1사 1,2루 SK 안치용의 타구를 잡으려다 외야 펜스에 부딪힌 한화 우익수 정원석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다. 동료 강동우와 한상훈이 달려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2.04.15/

국내 프로야구장의 외야펜스가 도마에 올랐다.

구단과 자치단체의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이 관중 700만 시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 정원석이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15일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SK와의 원정경기 도중 깊게 날아가는 타구를 잡으려다가 외야 펜스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정원석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앰블런스에 실려 나갔고, 오른쪽 엄지 탈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원석이 충돌했을 당시 상대팀 관중도 깜짝 놀랄 만큼 아찔한 장면이었다.

최하위로 갈 길 바쁜 한화로서는 귀중한 외야 자원을 잃었다. 정원석 사건을 계기로 국내 야구장의 외야펜스의 안전성 문제가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 구장들은 몇 해전부터 보수공사를 통해 딱딱한 외야펜스를 푹신한 펜스로 교체해왔기 때문에 안전성이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 실태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구동성 "아직도 불안하다"

프로 14년차의 베테랑 외야수 강동우(한화)는 "외야수는 타구를 빠뜨리면 장타가 되거나 실점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몸을 던지는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다"면서 "특정 구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모든 구단의 외야펜스가 외야수들에겐 여전히 무서운 존재다. 규정을 지켰다고 안주할 게 아니라 외야수들이 마음놓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충격 완화 보강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외야수들이 안심하고 수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예전 콘트리트벽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위험한 면이 많다"면서 "지난해 아시아시리즈가 열린 대만 구장을 보니 외야 펜스 쿠션이 좋은 것 같더라. 외야수들이 펜스에 부딪쳤을 때 펜스가 안쪽으로 들어가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목동구장에서 펜스 충돌로 어깨 부상을 했던 LG 이진영은 "국내 구장들은 역시 펜스가 모두 딱딱한 편이다. 문학구장은 물론 목동이나 잠실도 마찬가지다. 펜스 생각하면서 공을 안잡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원석이형도 그랬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타구에 대한 생각만 할 뿐이다"라며 강동우와 마찬가지로 외야수의 고충을 대변했다. 삼성 김헌곤은 "가끔 손으로 펜스를 만져보면 과감하게 부딪힐 자신이 없어진다"고 했고, 롯데 손아섭도 "지금 펜스는 전체적으로 매우 딱딱해 충돌시 부상 위험이 매우 높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펜스가 딱딱하다고 몸을 사려 플레이할 선수는 없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산 임재철 역시 "펜스 플레이할 때 안타를 만들어주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 안되는 것 아닌가. 일본야구를 보면 외야수가 부딪혔는데 펜스가 쑥 들어가더라.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구단의 안전 불감증, 화를 부른다

'펜스 충돌 1년에 몇 번 있겠나.' 국내 프로 야구단에 깔려있는 안일한 인식이 더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다.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게 질높은 야구 서비스의 기본이다. 돈 몇 천만원 아끼겠다고 억대 연봉 선수를 부상으로 잃는 누를 범할까 두렵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국내 야구장 시공 전문기업인 스포츠테레카에 따르면 대전구장을 제외한 모든 1군 경기장이 외야 안전펜스를 적용하고 있다. 2001년 문학구장을 시작으로 7개 야구장이 순차적으로 과거의 시멘트-나무벽을 걷어내고 특수 쿠션으로 교체했다. 이들 외야펜스는 55㎜ 두께의 특수쿠션(폴리우레탄+폴리에틸렌 합성 재질)위에 표층고무시트(두께 2㎜)가 덧씌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안전펜스 원래 형태로 유지된다면 웬만한 충격에도 부상이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구단의 사후관리다. 모든 구단이 외야펜스를 후원업체 광고판으로 사용한다. 목동, 광주구장을 제외한 6개 구장이 펜스에 업체 로고와 문구를 새겨넣는다. 매년 광고가 바뀌기 때문에 기존 광고를 지우고 외야펜스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에나멜 페인트 같은 유성 도료를 칠한다. 해를 거듭하면서 외야펜스는 페인트로 덫칠된다.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페인트로 덫칠된 펜스의 표층고무시트는 고무 특유의 부드러운 성질을 잃어버리고 합판처럼 굳어지고 만다. 알맹이(쿠션)는 멀쩡한데 겉이 딱딱해진 바람에 범퍼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외야펜스 정리를 위한 전용 우레탄 페인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 수입품으로 비용이 3배 가량 비싸다는 이유로 구단들은 꺼리고 있다. 우레탄 페인트를 사용할 경우 광고판 완성까지 1500만원 정도의 시공비가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수억원의 광고를 유치하고 700만 관중을 바라본다면서 1500만원의 투자가 아깝다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허리띠 졸라매기다. 목동, 광주구장은 외야펜스에 광고를 직접 새기지 않고 플래카드를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플래카드 표면이 미끄럽기 때문에 선수들 안전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애매한 관리 메카니즘도 문제

8개 구장 가운데 가장 시급한 곳은 문학구장이다. 문학구장은 외야펜스를 설치한 지 11년째로 가장 오래된데다, 페인트 덫칠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안전벽 구실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표층고무시트를 교체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외야펜스의 쿠션과 고무시트는 반영구적이지만 국내 프로야구처럼 광고판으로 사용할 경우 5∼6년에 한 번 정도 고무시트라도 교체해야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스포츠테레카의 설명이다. 일반 쿠션에 천막으로 싸인 대전구장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국내 야구장 관리는 관할 자치단체가 담당한다. 구단과 자치단체가 서로 공을 넘기는 통에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임대료를 내고 구장을 사용하는 구단들은 굳이 자기돈 들일 생각을 못하고, 자치단체는 뻔한 지방재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게다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초 권고사항으로 정한 외야펜스 규정도 애매하게 적용된다. KBO는 안전성 강화하기 위해 펜스 쿠션의 두께를 100㎜이상으로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의무규정이 아니라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기존 구장에는 그림의 떡이다. 최근 리모델링한 NC 다이노스의 마산구장이 가정 모범적인 경기장이고, 한화의 서산 2군 경기장 등이 100㎜ 규정을 따르고 있다. 결국 기존 구장들은 훨씬 큰 위험에 노출된 사실을 알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메이저리그 구장은 어떻게 다르나

야구팬들이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가 자주 목격하는 게 있다. 외야수가 외야펜스에 부딪히면 파도가 출렁거리듯 펜스가 물결치는 장면이다. 메이저리그 외야펜스도 기본 구조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축성을 더 중요시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몸값이 천문학적이다 보니 부상 방지에 더 염두를 둔 것이다. 미국의 외야펜스 쿠션은 한국보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신축성이 뛰어나서 선수가 부딪히면 자동차 에어벡 처럼 푹 안기도록 안전성이 뛰어나다. 그만큼 비용은 4∼5배 가량 비싼 편이다. 반면 한국 외야펜스는 신축성에 완충성까지 감안한다. 한국 야구가 펜스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의 탓도 크다. 타구가 펜스에 맞으면 푹 잠기는 미국과 달리 맞고 튕겨나와야 빠른 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을 위해서는 메이저리그처럼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기존의 한국형 펜스가 최초 시공상태를 유지하도록 보수를 하면 부상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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