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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돌부처'인 오승환(30·삼성)이 움찔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은 파울이 될 것이라는 순간의 예상을 깨트리면서 홈런이 돼 버렸다. 좌측 폴대를 그대로 강타했다. 무표정이 몸에 밴 오승환의 얼굴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는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홈런볼이 날아간 좌측 외야를 한 번 쳐다보고 내려왔다. 삼성 덕아웃의 동료들은 철벽 마무리가 보기 드물게 두들겨 맞고 내려오자 선후배가 서로 위로하기 바빴다. 정말 낯설었다.
오승환은 2-1로 앞선 7회 수비에서 차우찬, 박정태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오승환이 누구인가. 지난 시즌 그는 54경기에 등판, 1승47세이브를 기록했다. 홈런은 두 개 맞았고, 총 4실점했다. 지난 시즌 방어율이 0.63으로 매우 낮았다. 그래서 팬들은 그에게 '끝판대장'이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이런 오승환이 등장했으니 상황은 조기에 종료되는 수순을 밟아가야 정상이었다. 지난 시즌 같았다면 삼성이 리드한 상황에서 오승환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 타선의 기가 죽었을 정도였다. 그런 오승환이 무너졌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오승환은 시범 경기 4경기 만에 첫 등판했다. 전력투구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오승환이 정규시즌에서 마무리로 나올 경우 시속 150km 내외의 직구를 뿌린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타자가 오승환의 묵직한 직구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회전이 많다 보니 배트에 공이 맞아도 잘 뻗어나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안정광에게 홈런 맞은 직구는 그렇지 않았다. 오승환이 전력 투구를 하면 공을 뿌리고 난 후 두 발이 잠깐 지면에서 떨어진다. 하지만 오승환은 이날 그 정도로 힘껏 볼을 뿌리지도 않았다.
오승환을 무너트린 안정광은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인천 출신으로 인천 제물포고와 제주산업대를 거쳐 2009년말 SK로 프로 입단했다. 1군 통산 기록이라고 해봤자 지난 시즌 18타수 4안타 3타점이 전부였다. 프로 1군 경기 첫 홈런을 오승환에게서 빼앗았다. 안정광의 목표는 1군 엔트리에 살아남는 것이다. 안정광이 나갈 3루수에는 강타자 최 정이 버티고 있어 바로 주전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승환에게 홈런을 때렸다고 안정광을 이번 시즌 1군 경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만수 SK 감독은 "안정광이 홈런으로 자신감을 찾았을 것이다"며 칭찬했다. 알바레즈 SK 코치(쿠바)는 인터뷰 중인 안정광에게 다가와 "마이 히어로"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안정광은 "우리나라 최고의 마무리 투수에게서 홈런을 쳐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가슴이 뛴다"면서 "처음엔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안타 정도로 생각하고 뛰어 나갔는데 타구가 점점 더 멀리 날아갔다. 정규시즌에 다시 만나 붙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안정광은 경기 전 연습 배팅을 하는데 밸런스가 매우 좋았었다고 했다. 인천=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