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 사이판 가야돼!" 뜨거웠던 LG의 체력테스트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1-10 14:58


"나 사이판 가야 돼!"

모든 걸 기록으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LG가 3년 만에 체력테스트를 부활시켰다. 지난 2년 동안 겨울에도 강도높은 단체훈련을 소화했기에 체력테스트가 따로 필요 없었다.

하지만 신임 김기태 감독은 선수단에 '자율'을 내걸고 각자 개인훈련을 하도록 했다. 프로 선수라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훈련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대신 수치를 통해 개인훈련의 결과물을 확인하겠다는 것. 2012년 첫번째 훈련일인 10일, 운명의 체력테스트가 진행됐다. 이날 잠실구장 내 체력단련장과 보조경기장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악에 받친 절규도 들렸다.

"나 사이판 가야돼!" 선수들의 절규

LG 김기태 감독은 이미 사이판과 오키나와에서 진행되는 스프링캠프에 데려갈 예비 명단을 짜놨다. 대략 45명. 체력테스트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40명 가까이는 문제없이 스프링캠프에 갈 것"이라며 "테스트 결과를 보고 뺄 선수는 빼고, 추가로 데려갈 선수들은 데려가겠다"고 했다. 김 감독은 테스트를 전담하고 있는 김용일 트레이닝코치에게 박명환이 허리통증으로 체력테스트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럼 명단에서 한명 더 빠졌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축 선수들이라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말이 휴식이고, 자율이었지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체력테스트는 복근을 체크하는 윗몸일으키기와 50m 달리기 3회, 4000m 장거리달리기로 진행됐다. 김 감독은 체력테스트 구성과 진행을 김용일 트레이닝코치에게 맡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테스트 현장을 오가며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을 관찰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진행된 오전에는 현장에 패기가 넘쳤다. 가장 먼저 복근 측정을 한 투수 송윤준(2011 신인)은 1분30초 동안 87개를 해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불펜의 주축투수인 한 희가 57개에 그치자 곳곳에서 "너 큰일 났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후 선수들이 못해도 70개 이상을 해내자 한 희는 "너무 정직하게 했다"며 아쉬워했다.


장갑을 헐겁게 끼는 등 '꼼수'를 부리는 선수들도 보였다. 김성현은 장갑 안에 이물질을 넣다가 김용일 코치에게 적발돼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정의윤은 무려 92개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인 뒤 체력단련장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포수 주전경쟁에 뛰어든 김태군은 "나 사이판 가야돼!"를 외치며 70개를 채웠다.

추운 날씨에 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단거리와 장거리 달리기는 더욱 치열했다. 박현준은 단거리달리기에서 기록이 좋지 않자 양승진의 가벼운 신발을 빌린 뒤 0.2초를 단축시키고 기뻐했다. 이런 박현준을 본 김 감독은 "살이 찐 것 같다. 사이판 갈 수 있겠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박현준은 "전주에서 산을 열심히 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적생들의 활약, 노익장 발휘한 베테랑들

이적생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조인성의 FA 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로 LG 유니폼을 입게 된 투수 임정우는 단거리달리기에서 6초5로 임찬규와 투수조 공동 2위를 기록한 뒤 장거리에서는 16분26초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임찬규는 16분42초를 기록한 뒤 "난 작년에 내내 2등만 했는데 테스트에서도 전부 2등이다"라며 혀를 차기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에서 이적한 외야수 임정우는 단거리달리기에서 6초1을 기록하며 이대형 양영동 등 발빠른 선배들을 제치고 전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2년 만에 LG로 돌아온 최고참 최동수는 41세의 관록을 과시했다. 김 감독은 "최동수는 39살 2호봉"이라며 "조금 기록이 떨어져도 감안해줘야 한다"며 웃었다. 최동수는 단거리에서 7초5로 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지만, 장거리를 완주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최동수는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도 매일같이 나와 웨이트도 하고, 러닝도 했다. 기록이 좋은 건 아니지만, 나도 해냈다는 점이 기쁘다"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니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올시즌 다시 '빠른 발'을 과시하겠다고 선언한 박용택 역시 단거리에서 6초3을 기록했다. 30대 이상 선수들 중에 가장 좋은 기록. 이대형은 6초4를 기록한 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뛰었지만, 기계가 오작동하며 6초4 기록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