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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생존 무기'로 거론한 컷패스트볼은 어떤 구질일까. 또한 컷패스트볼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컷패스트볼의 특징
컷패스트볼은 줄여서 커터라고도 불린다. 2000년대 초반 용병 투수가 커터를 던질 때 코치들이 사투리를 섞어 "저게 바로 ?(컷)이야 ?!" 했다는 일화도 있다.
흔히 우리가 직구라 부르는 포심패스트볼 그립과 비슷하게 공을 잡는다. 대신 약간 더 틀어쥐는 경향이 있으며 릴리스 때 중지로 공을 찍어눌러야 한다. 악력이 좋아야 수준급 커터를 던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른손투수가 컷패스트볼을 던지면 홈플레이트 근처에 가서 왼손타자의 몸쪽으로 약간 꺾이며 떨어진다. 혹은 바로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투수마다 그립 습관이 약간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팔꿈치나 손목을 비틀지 않고 던지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낮다. 타자들은 직구인 줄 알고 배트를 내지만 공은 약간 꺾여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손잡이 근처에 맞아 배트가 부러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타자들은 배트 손잡이 근처에 공이 맞아 그 여파를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순간을 극도로 싫어한다.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피처링 by 리베라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지다보니 요즘은 '피처링'이란 말이 일상화됐다. 박찬호표 컷패스트볼은 뉴욕 양키스의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피처링한 작품이다.
미국에서 뛸 때, 박찬호는 주요 구질 두가지를 베테랑 투수들로부터 배웠다.
필라델피아 시절에는 제이미 모이어로부터 체인지업 그립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전에도 던진 구질이지만 모이어로부터 섬세함을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왼손타자의 바깥으로 흘러나가면서 종으로 떨어지는 구질이다.
대표적인 '타자 기만 구질'인 체인지업은 본래 직구를 던질 때와 같은 팔 스피드, 같은 릴리스포인트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그래야 타자들이 잘 속는데, 박찬호는 모이어에게 이같은 요령에 대해 조언을 받았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뛴 2010시즌에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14%, 평균 구속은 134㎞ 정도였다.
박찬호 본인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시절에 제이미 모이어와 라이언 매드슨에게 컷패스트볼을 던지는 요령을 약간 배우기도 했다. 그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뒤 빅리그 최고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로부터 본격적으로 커터 던지는 방법을 익혔다.
개인통산 603세이브로 빅리그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리베라는 포심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로 대표되는 투수다. 놀라운 건 그가 던지는 컷패스트볼 구속이 94~95마일(약 151~153㎞)에 달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투수들은 포심패스트볼조차 150㎞를 넘기 힘들다. 시속 150㎞를 넘는 공이 타자 앞에서 살짝 꺾이니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그의 커터 앞에서 수많은 배트가 부러져나갔다.
결국엔 구속이 중요하다
이처럼 컷패스트볼은 제대로 던질 경우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질이다. 현역 시절 다양한 구질을 던져 '팔색조'로 불린 LG 조계현 수석코치는 "컷패스트볼은 잘 던지면 한국, 미국, 일본에서 모두 통하는 구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전제가 필요하다. 제구력은 두말할 필요 없다.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포심패스트볼이 위력적이라야 한다. 직구 평균시속이 145㎞ 이상은 돼야 컷패스트볼도 위력을 갖는다. 타자들이 상대 투수의 직구에 공포감을 갖고 있어야, 커터에도 잘 속게 된다.
아울러 포심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의 구속 차이가 되도록 적어야 효과적이다. 대체로 5㎞ 이내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간단히 말하면 포심패스트볼인지 컷패스트볼인지 구별할 수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찬호는 지난해 오릭스에서 뛸 때 시범경기에서 컷패스트볼을 던졌는데 구속이 136㎞밖에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위력적일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포심패스트볼 구속 자체가 떨어져서 고생했다. 그러니 커터 역시 효율적이지 못했다. 박찬호가 146~147㎞ 정도의 직구를 계속 던지면서 140㎞대 초반의 커터를 섞는다면 국내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컷패스트볼을 '생존 무기'로 삼겠지만, 그게 유일한 무기가 되면 안 된다. 박찬호는 미국 시절 훌륭한 브레이킹볼을 던지던 투수였다. 체인지업, 슬러브, 커터,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장착했던 박찬호다. 근본적으로는 평균 145㎞를 넘는 포심패스트볼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