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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가 밝힌 '변화'의 A to Z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1-12-06 11:51


김선우는 햄스트링 부상 이후 축족인 오른다리를 강하게 차는 와일드하고 역동적인 투구폼 대신 부드럽게 끌고나가는 슬라이딩 투구폼으로 변했다. 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김선우는 부상의 강요로 변화의 문을 통과하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2011,09,23

변하는 게 싫었다. '타협'이란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다. 자괴감이 들었다.

두산 토종 에이스 김선우(34). 그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다. 25년 야구 인생을 지탱해 온 힘. 절반이 자존심이었다.

2010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번뇌 수준의 고민에 빠졌다. 환경이 변화를 강요했다. 결국 그는 마음 속 깊이 박힌 자존심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캠프 때 다친 햄스트링 부상이 원인이었다.

"작년에 고민을 너무 많이 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죠. (투구) 결과가 좋든 나쁘든 늘 고민이 많았어요. '이건 내가 생각한 야구가 아닌데…' 이런 생각이 늘 머릿 속에 맴돌았죠."

타자를 윽박지르는 파워피칭. 아마 시절부터 김선우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정면 승부를 즐길만한 충분한 힘이 축적돼 있었다. 그렇기에 늘 '내가 최고'란 파이터 정신으로 마운드에 섰다. 김선우에게 피칭은 1대1 '맞장'과 같았다. 힘으로 맞서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깨끗하게 승복하는 그런 거였다. 그래서 그는 홈런을 맞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을 때가 많다. '때론 피해가라'는 주위의 조언에도 김선우는 "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며 정면 승부를 고수했다.

그러던 그가 변했다. 아니 변해야 했다. 부상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힘의 승부가 아닌 수싸움과 완급조절이 시작됐다. "고민은 작년에 다했구요. 올시즌 시작할 때는 마음이 편했어요. 몸이 괜찮아졌지만 시즌 동안 딱 10경기만 던지라고 한다면 세게 던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긴 시즌을 어떻게 버틸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슬슬 던지는 그의 피칭에 오히려 타자들은 어쩔줄 모른채 쩔쩔 맸다. 힘 대결보다 강약 조절을 통한 피칭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결과가 수치로 남았다. 올시즌 28경기에서 16승7패, 방어율 3.13의 정상급 활약. 국내 무대 데뷔 후 최고 성적이었다.

"올해는 더 느리게, 더 느리게 던지려고 했어요. 어느 순간 타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이 타자가 나오면 이렇게 던지면 되고, 노리는 곳에 비슷하게 던져 떨어뜨리고, 치려는 의욕이 강하면 더 느리게 던지고요. 예전에는 오직 내 자신에게만 이기려고 했거든요. 100% 힘으로 빠르고 날카롭고 정확한 공만 던지려고 고집했었죠. 타자 후배들이 '형 공은 눈에 딱 보이는데 치면 땅볼'이라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우리팀은 야수들이 워낙 좋잖아요. 저는 내야를 200% 이용하고 있는 셈이죠."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누른다는 의미의 이유제강(以柔制强). 유도와 전통무예에서의 강조점이다. 타이밍과 코스의 미학인 피칭도 같다. 김선우는 우연한 기회에 수싸움과 완급조절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입문해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삶의 항해에 있어 세월의 역풍에 맞서는 건 어리석다. 김선우 호가 방향을 틀어 순풍에 몸을 맡겼다. 다른 모습으로 맞이한 제2의 전성기, 향후 3년은 거뜬할 것 같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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