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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이 우리편', 국가대항전의 묘미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1-28 12:39 | 최종수정 2011-11-28 12:39


국가대항전에선 국내 모든 팀의 팬들이 편안하게 오승환의 활약을 감상할 수 있다. 오승환이 27일 퉁이와의 아시아시리즈 예선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대만=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오승환이 '우리편'이다. 늘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삼성이 27일 아시아시리즈 예선 퉁이전에서 6대3으로 승리했다. 사실 힘겨운 승리였다. 경기 중후반까지 '이러다 망신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해보였다.

이날 한국 야구팬들이 속시원하게 느꼈을 대표적인 두 장면이 있다. 8회에 나온 최형우의 2점홈런, 그리고 9회에 등판한 오승환의 피칭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권오준의 호투와 박석민의 깔끔한 수비가 승리에 큰 역할을 했지만, 역시 막힌 속을 뚫어준 건 최형우와 오승환이었다.

특히 오승환은 9회에 대만 야구팬들에게 삼성이 왜 한국프로야구 우승팀인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전광판에 최고 시속 153㎞가 찍혔다. 계속 이어지는 150㎞짜리 포심패스트볼이 낮은 코스로 팍팍 꽂히자 현지의 대만팬들은 거의 숙연해진 분위기였다. 첫 두타자를 삼진으로 잡는 동안 배트에 공이 닿지도 못했다. 마지막 타자가 가까스로 공을 건드려 내야땅볼로 물러난 게 퉁이 라이온즈에겐 다행일 지경이었다.

아시아시리즈는 클럽컵 대회다. 하지만 리그간 대결이 드문 프로야구에선 일종의 국가대항전 성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야구팬들은 삼성이 퉁이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동점홈런까지 내줬을 때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평소엔 프로야구 팬들이 서로 편을 갈라 티격태격하지만, 근본적으로 국가대항전에선 리그를 대표해 출전한 팀이 이기기를 원할 것이다. 리그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적어도 오승환이 던지는 동안에는 모든 팬들이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인터넷에는 '삼성팬이 아니지만 오승환이 우리편이라 생각하고 보니 정말 든든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랐다.

'오승환이 우리편'이라는 느낌. 삼성을 제외한 7개팀의 팬들이 평소 정규시즌에선 맛볼 수 없었던 짜릿함과 쾌감에 휩싸였다고 단정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바로 이것이 국가대항전의 묘미다. 류현진도 우리편, 윤석민도 우리편, 하도 파울을 많이 쳐서 평소 얄미웠던 이용규와 너무 부지런한 정근우도 우리편이다. 상대팀으로 만날 땐 미워도, 국가대항전에선 팬들을 든든하게 만드는 '우리편'이다. 오승환이 27일 경기에서 이같은 기분을 만끽하게 해줬다.

오승환에게도 국가대항전에서의 활약은 꽤 오랫만이다. 2006년 1회 WBC때 박찬호 등과 마무리를 번갈아 맡아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2회 WBC에선 구위가 좋지 않아 중용되지 못했다. 이번 아시아시리즈에선 최고의 몸상태로 최고의 직구를 던지는 게 드디어 실전에서 확인됐다. 올시즌 47세이브가 괜한 수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말이다.


정규시즌 때도 그랬다. 상대팀 팬들조차 오승환이 등판하면 그가 어떻게 던지는 지를 감상했다. '삼성 야구는 8회까지다'라는 농담은 다른 팀 팬들에겐 절망을 의미하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시아시리즈에선 모든 팬들에게 '오승환은 우리편'이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응원팀 타자들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닌, 오승환이 시원시원하게 뿌려대는 직구를 보면서 흐뭇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국가대항전은 이런 묘미가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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