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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호가 특별한 것은 출전경기수 만이 아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차례도 교체 아웃된 적이 없다. 보통은 주전포수의 체력 안배를 위해 경기 막판 백업포수를 투입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업포수 허 웅은 시즌 도중 신고선수에서 정식선수로 전환돼 첫 1군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경험이 적다. 게다가 시리즈가 박빙 상황으로 흐르다보니 쉴 틈이 없다.
현역 시절 포수로 뛰었던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포수가 얼마나 힘든 포지션인지 안다. 때문에 아픔을 참고 묵묵히 뛰는 정상호에게 유독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사실 정상호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박진만처럼 한경기 쉬게 해주려 했다. 2차전 때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상호의 의지는 강했다. 호텔 방으로 직접 찾아온 이 감독에게 "쓰러지더라도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겠다. 끝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데뷔 첫 해부터 44경기에 나서면서 미래의 주전감으로 육성됐지만, 2002년 말 박경완이 FA(자유계약선수)로 SK에 오면서 기회를 잃었다. 박경완이 왼발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된 2009시즌 중반부터 주전 마스크를 썼지만, 팀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오히려 SK가 우승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박경완의 부재'를 꼽았을 정도였다. 결국 박경완이 돌아온 지난해 35경기 출전에 그쳤다.
만년 백업포수 정상호는 올해 박경완의 부재 속에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는 백업포수 허 웅, 최경철 등을 이끄는 당당한 주전포수였다. 그가 참을 수 없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를 악무는 이유다. 정상호는 오히려 잔부상을 달고 산 자신을 탓했다. 그는 "이번에는 꼭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쏟아 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철인' 정상호는 이렇게 대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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