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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투수진이 최강이라지만, 사실 틈새는 있다. 3차전부터 상대적으로 약한 선발진에서 그런 모습들이 발견되곤 한다.
순식간에 찾아온 위기
윤성환의 구위는 매우 좋았다.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쉬는 동안 "제 1선발로 뛸 수 있을 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큰 무대에서 위기는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다.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투수의 진정한 가치가 나온다.
3회였다. 선두타자 정상호를 삼진으로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박진만에게 볼카운트 2-1으로 유리한 상황. 연신 파울을 쳐내던 박진만을 잡기 위해 132㎞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다. 그러나 가운데로 오는 실투. 박진만은 안타를 치고 나갔다. 정근우 역시 140㎞ 직구를 밖으로 침착하게 밀고 우선상 2루타를 쳤다. 파울로 선언될 수 있는 타구. 그러나 심판진은 인정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1사 2, 3루 상황. 급격하게 흔들린 윤성환은 박재상에게 볼넷을 내줬다. 그 와중에 진갑용과의 사인도 두 차례나 제대로 맞지 않았다.
세 차례 역발상으로 잡아낸 최 정
이때부터 진갑용의 명품리드가 빛나기 시작했다. 최 정은 초구부터 커브를 노리고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볼넷을 허용한 다음 타석. 투수는 당연히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윤성환의 주무기 커브인 점을 감안한 결정. SK 타자들이 즐겨쓰는 선택들이다.
진갑용은 알고 있었다. 윤성환에게 커브를 요구했다. 땅에 박히는 낮은 커브였다. 결국 최 정은 헛스윙을 했다. 2구째는 과감했다. 곧바로 같은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요구했다. 예상치 못한 볼배합이었다. 결국 볼카운트 2-0. 급격히 흔들리던 윤성환은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아내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 정은 까다로운 타자. 바깥쪽 꽉찬 직구를 던졌지만, 최 정은 가볍게 커트해 냈다. 흔들렸던 윤성환이 실투를 던질 가능성도 높은 상황. 빠른 승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최 정이 염두에 두고 있는 직구나 커브는 유인구로 던져도 승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4구째 131㎞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3구째 던진 직구와 같은 궤적으로 들어오다 밖으로 꺾이면서 떨어지는 슬라이더. 최 정의 배트가 헛돌 수밖에 없었던 절묘한 볼 배합이었다.
맞춤형 볼배합 안치용
윤성환은 확실히 큰 무대 경험이 부족하다. 최 정을 삼진으로 처리한 뒤 박정권에게 초구를 던졌다. 낮은 커브를 던지려다 폭투가 됐다. 결국 1점을 헌납하고 난 뒤 선택은 고의4구.
삼성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가을에 유독 강한 박정권보다 안치용과 맞대결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안치용이 노리는 볼도 변화구였다.
이유가 있다. 2회 안치용과 윤성환의 첫 맞대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치용은 '노림수 타격'에 매우 능하다. 선구안이 매우 좋기 때문에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끈질기게 커트한 뒤 자신이 노리는 볼에 자신있게 방망이가 나간다. 2회 안치용은 우익수플라이로 아웃됐다. 1-3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연거푸 3개나 던진 윤성환의 위력적인 직구에 배트가 밀렸다. 특히 7구째 가운데 낮게 들어오는 140㎞ 직구를 잘 쳤지만, 결국 타구는 뻗지 못하고 우익수플라이에 그쳤다.
직구공략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안치용도, 진갑용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갑용의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커브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치용의 선구안은 매우 좋다. 볼넷도 많이 골라낸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한 진갑용은 처음부터 직구로 승부했다. 2구째도 직구. 3구째 역시 직구가 들어오자 안치용은 파울을 쳐냈다. 이 상황이면 떨어지는 유인성 변화구를 선택할 만도 했다. 하지만 진갑용은 바깥쪽 꽉 찬 직구를 다시 요구했고, 제대로 들어왔다. 3회 급격히 흔들렸던 윤성환이 무너졌다면, 삼성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역전까지 당했다면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SK에 넘겨줄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삼성의 최강 투수진 뒤에는 진갑용이 버티고 있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