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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만수 감독대행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4번 타자로 이호준을 냈다. 하지만 2타수 무안타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1차전에서 패했다. 이번 플레이오프서도 1,2차전 4번 타자는 이호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5타수 무안타. 이때마다 이 감독의 4번 타자 고민을 해결해 준 이는 박정권이었다.
박정권은 이번 준플레이오프 4경기서는 12타수 6안타로 5할 타율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서도 4차전까지 16타수 6안타로 3할7푼5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팀 내에서 가장 좋았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모두 타점은 2개에 그쳤다. 꾸준히 안타를 때려내며 팀의 찬스를 만들어갔지만, 해결사의 면모는 보이지 못했다.
박정권은 올시즌 122경기서 타율 2할5푼2리에 13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평범하다 못해 기대치에 못 미친 성적. 당시 박정권은 "타석에서 욕심이 앞섰다. 이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할 때"라고 했다. 타석에서의 욕심은 타격 밸런스를 흐트렸다. 마음이 조급해 중심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즌 막판부터 힘을 냈다. 2군에 내려간 동안 마음을 비우고 방망이를 돌리는 데만 집중했다.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니 주변에서 '가을이 되서야 잘 친다'는 말이 많았다. 그 역시 기분 나빠하지 않고 "이제 가을이니까 한번 쳐볼까"라는 식으로 유쾌하게 넘긴다고.
박정권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 마음가짐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계속 4번으로 기용해주시는데 내가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나 팀을 살려야겠다는 부담감을 가지면 역효과가 난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노력중"이라고 했다. 곧이어 "감이 살아나기 시작한 뒤로 매일 마인드 컨트롤하고, 좋은 생각만 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결과도 좋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날 팀을 구해낸 홈런에 대해서도 박정권은 "홈런을 치려고 들어간 타석이 아니다. 다음 타석으로 연결해주려고 들어갔는데 똑같은 구종이 3개가 들어왔다. 마지막 공은 치기 좋게 들어왔다. 실투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정권은 "원래 야구장에 도착하기 5분 전에 부인과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한다. 근데 오늘 전화를 안 받더라"며 "이상해서 오늘만 특별히 핸드폰을 경기장에 갖고 왔다. 게임 전에 통화를 10분 정도 했는데 그게 좋은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시리즈에 대해서는 "이런 단기전은 벤치 분위기가 반 이상을 좌우한다. 체력은 문제 없다. 삼성도 많이 쉬었지만, 우리가 분위기 탄 것은 쉽게 막지 못할 것이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박정권은 기자단 투표로 선정되는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됐다. 총 62표 중 59표를 얻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2009년 플레이오프,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에 이어 가을에 받은 세번째 상이다.
부산=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