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둔 명문구단은 불과 나흘 만에 최고 의사결정을 180도 뒤바꿨다.
|
무엇보다 이번 결정의 가장 큰 원인은 KIA 팬 여론의 계속된 악화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조범현 감독이 취임한 2008년부터 지역 여론은 조 감독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우선 대구 지역 출신이 호남 연고 팀의 감독을 맡았다는 것과, 조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이 이전 KIA(해태)가 보여줬던 '롱볼'과는 정반대의 '스몰볼'이란 이유로 팬들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 하필 부임 첫해 KIA는 최하위를 했다. 부임 이전, 이미 와해됐던 팀 전력과 조직력을 조 감독이 1년 만에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팬들은 결과만 기억했다.
KIA 팬들이 결정적으로 조 감독에게 등을 돌리게 된 건 2010년 중후반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유증에 시달린 KIA는 이때 사상 초유의 16연패를 당했다. 그때 일어난 비난 분위기는 올해까지 이어졌다. KIA가 전반기를 1위로 마친 것이 역설적으로 조 감독에게는 더 악재였다.
KIA는 후반기가 되자 최악의 주전 선수 연쇄부상을 겪으면서 결국 4위까지 추락했다. 연쇄부상 여파가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먼저 1승을 거뒀지만, 무기력하게 3연패를 당했다. 그러자 일부 KIA 팬들은 인터넷상에서 감독 퇴진운동까지 주도하며 조 감독 경질 여론을 형성해나갔다.
그룹 최고위층의 결단
이러한 팬 여론에도 불구하고, 애초 구단 내부 분위기는 조범현 감독의 잔여임기를 보장하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팬들의 시각과 구단의 평가 기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구단 실무진이 내리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에서 조 감독은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만 내세우던 팀 컬러를 다시금 끈끈하게 바꿔놓으며 부임 2년차에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윤석민을 한국 최고의 에이스로 조련하는 등 공적이 많다고 봤기 때문.
더불어 안치홍 김선빈 나지완 차일목 양현종 곽정철 손영민 등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을 팀의 주축으로 키워냈다.
그래서 구단 내부 관계자들은 조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한 걸 알면서도 잔여 임기보장의 뜻을 피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나흘만에 번복한 것은 역시 모그룹 최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일부 지역언론에서 준플레이오프 패배 이후 조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을 기사화하면서 구단에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모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의 움직임까지 파악되자 크게 부담을 느낀 것이다.
2~3일 전부터 그룹 고위층에서는 감독 경질의 카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선동열 전 삼성감독과의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동열 감독 역시 KIA의 제안에 긍정의사를 밝히자 조 감독 경질 카드는 곧바로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