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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주장 이호준. 그의 예상은 틀렸다. 오후 4시가 아니라 오후 6시였다. 그러나 극적인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어떻게 보면 질책성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호준은 뻔뻔할 정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포스트 시즌은 팀 분위기가 중요하다. 벤치에서 내가 응원대장을 할 것"이라고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예언성 발언을 했다. "4시 정도에 나가서 한 방 치고 팀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5시가 지나도록 잠잠했다. 기회는 그의 말대로 일찍 찾아왔다.
7회 2사 1, 3루 상황에서 대타로 기용됐다. 그러나 3루수 앞 땅볼. 9회말에도 2사 만루의 찬스가 걸렸다. 하지만 유격수 앞 땅볼이었다. 안타까운 타격이었다.
결국 두 팀은 2-2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11회 말. 또 다시 우여곡절 끝에 기회가 생겼다. 1사 2, 3루 상황에서 최 정이 3루수 땅볼로 아웃됐다. 3루 주자를 홈에 불러들이지 못했다. 투아웃이 됐다. KIA 투수 한기주는 박정권으로 고의4구로 걸렸다. 타격감이 좋지 않은 이호준과 승부를 하겠다는 의미. 두 차례나 기회를 날려버린 이호준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이호준은 "최 정이 범타로 물러났을 때 박정권을 100% 거를 거라고 생각했다. 부담은 되지 않았다. 원래 그 자리(5번 타자)가 원체 기회가 많이 오니까. 뭐 '이기면 영웅이고 못 치면 욕을 두 배로 먹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볼이 연속으로 3개가 들어왔다. 4구로 끝낼 수 있는 찬스. 4구째, 볼이 좀 높았다. 그러나 임채섭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5구는 몸쪽 직구가 제대로 박혔다.
긴장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호준은 "직구면 휘두른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직구가 들어왔다. 이호준의 타구는 바운드를 길게 그린 뒤 유격수와 2루수 사이로 빠져나갔다. 극적인 끝내기 안타. 정확히 오후 5시53분의 일이었다.
이호준은 "직구여서 쳤는데 알고봤더니 낮았다. 볼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은 그의 얼굴에는 기분좋은 표정이 남아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취재진에게도 걸죽한 입담을 과시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30분 먼저 끝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웃었다.
9회 자신의 끝내지 못했다는 자책을 유머스럽게 표현한 것이었다.
오지랖도 넓었다. 이날 정근우가 준플레이오프 한경기 최다인 4안타를 쳤다. 이호준은 "그 기록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라고 거들었다. 정근우를 포함, 모두 12명이 역대 준플레이오프에서 4안타를 친 기록이 있다.
자리에 나란히 앉은 이 감독대행이 옆에 앉아있는 정근우의 손을 잡고 있는 걸 본 뒤 "왜 제 손은 안 잡으세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자칫 최악으로 돌변할 수 있었던 이틀간의 부진을 한 순간에 바꾼 이호준. 그의 엄청난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