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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LG 불펜의 왼손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며 사흘이 멀다하고 등판했던 마당쇠의 상징같은 투수. 슬슬 잊혀져 가던 그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LG 선수로 복귀를 타진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정년퇴직한 직장에 신입사원으로 재입사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류택현은 지난해 9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 구단에서는 은퇴 후 전력분석원이나 스카우트로 새출발하기를 권유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통산 811경기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투수부문 최다기록 보유자인 조웅천(은퇴)의 813경기가 코앞이다. 그는 "기록에 욕심이 있어 수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힘든 길을 걷는 게 아니다. 작년에 아픈 걸 참고 던졌으면 기록은 충분히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진짜 이유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바로 '야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서'였다.
류택현은 2007년 23홀드로 홀드왕을 차지했던 해도 잊지 않고 있었다. 시즌 전 팀에서는 그해 입단한 봉중근의 마무리 기용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류택현은 "2006년에 어깨가 아파 고생했지만, 그해 필승조는 당연히 나일줄 알았다. 하지만 팀에서는 내가 아닌 김재현(한화에서 뛴 뒤 은퇴)을 선택했다"면서 "신경쓰지 않고, 몸을 만들었다. 그때 남을 신경쓰지 않고, 멀리 보는 법을 익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에는 야구가 더 잘 보였다고 했다. 똑같은 상황인데 한 수, 두 수가 더 보였다. 그해 그는 12홀드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야구를 알게 된' 뒤 통증이 재발했다. 시즌 초 직구 구속이 130㎞대 초반에 머물 때만 해도 문제를 잘 몰랐다. 하지만 롱토스 도중 평소 던지던 40m 이상을 던졌더니 공이 나가지 않았다. 죽을 힘으로 던져봐야 50m가 끝이었다. 팔에 힘이 없었다. 마지막 인대가 끊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류택현은 "94년 데뷔했을 때 비빔밥을 못 비빌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다. 그해 방위로 복무할 때 제초작업을 하면서 팔에 근력이 늘었다. 그 이후에는 아파도 던질 만 했다. 2006년에도 심하게 아팠지만 재활로 버텨냈다. 하지만 작년에 아팠을 때는 '더이상은 안되겠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류택현은 수술을 미룬 것을 후회했다. 2008년 이미 그에게 수술 판정이 났었지만, 재활 뒤 다시 공을 잡았다. 그는 "작년에도 시즌 초반 수술을 빨리 결정했으면, 지금쯤 복귀해서 던지고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곧이어 "아픈 게 1,2,3단계가 있다고 보면, 우리나라 투수들은 마지막 단계인 공을 던지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수술을 결정한다. 1단계부터 빨리 체크해서, 3단계가 되기 전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나같은 투수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비로 수술을 강행한 류택현은 추운 겨울에는 미국 LA로 넘어가 운동을 계속했다. LG 박종훈 감독은 지난해 방출 직전 그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류택현은 "운동할 공간만 제공해달라"고 했고, LG 구단은 흔쾌히 2군 훈련장에서 재활하는 것을 허락했다. 2월 말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는 2군 선수들과 함께 몸을 만들었다.
그의 직구 구속은 아직 130㎞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몸상태는 80% 정도. 류택현은 "90%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문제가 없다. 마지막 100%까지 가는게 힘들다"면서 "9월 중순 이후에는 타자를 세워놓고 하는 라이브 피칭을 할 예정이다. 시즌이 끝나면 테스트를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다시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는 그 날까지 열심히 준비하겠다"며 미소지었다. 불혹을 넘은 나이지만, 뒤늦게 알게 된 야구의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재활의 시간은 전혀 아까워 보이지 않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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